"우리 병원 소화기내과의 이 박사는 어렵게 찾아낸 명의 중의 명의지요. 왠줄 아십니까. 환자가 오면 먼저 일어나 인사하지요. 퇴근은 거의 매일 밤 10시이고 주말에도 진료실을 지킵니다.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환자에겐 자신의 휴대폰 번호까지 알려줍니다. 늦은 밤이라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전화하라는 뜻에서지요. 자신보다 환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명의지요. "

최근 '삼형제의 병원경영 이야기'를 펴낸 선승훈 선병원 의료원장(52)의 설명이다. 미국 버클리대와 조지타운대 출신인 그는 병원 경영 초기 명의에 집착했다. 미국 전역을 훑었다. 삼고초려 끝에 우수한 의사들을 많이 영입했다. 하지만 그가 내린 '진짜 명의'의 결론은 이렇다.

"20년간 병원을 경영하면서 많은 의사들을 지켜봤지요. 성격도 다르고 진료방법도 다릅디다. 한 가지 사실은 병을 고친다고 다 명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력은 배우려는 노력이 있고 임상경력이 쌓이면 비슷해집니다. 진짜 명의는 정성을 다해 진료하는 의사,환자가 필요할 때 그들 곁에 있는 의사지요. "

환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명의라는 것이다. 대전에는 대학병원들이 많다.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대학병원을 찾는다. 일반 병원은 대학병원에 비해 약자이자 을이다. 하지만 선병원은 대학병원이 아닌데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덕분이다.

한국처럼 '갑'과 '을'의 관계가 분명한 곳도 드물다. 중소기업은 거의 모든 관계에서 을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중소기업도 많이 있다. 기자가 20여년간 현장을 뛰면서 느낀 것은 종업원 · 거래처 · 고객에 대해 '세심한 배려'가 있는 기업은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제화업체 안토니를 보자.이 회사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 설문동은 파주와의 접경지역으로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다. 사람구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중소 구두업체에 누가 취직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 회사 경영자는 종업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듬뿍 담아 고급 스포츠카를 직원 취미용으로 사줬고 수상스키 승마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자신은 일산 전셋집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지만 직원이 우선이었다. 그 결과 이직률이 크게 줄고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안토니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일부 독자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직원에게 잘해주면 이들은 몸을 던져 일한다. 회사가 잘될 수밖에 없다. 직원들에게 석 ·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환경업체 ㈜나노,주식을 나눠주고 억대 연봉자를 탄생시키겠다는 포부를 지닌 기능성 섬유업체 ㈜벤텍스 역시 비슷하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MK택시의 유봉식 창업자는 호통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습 교육을 받을 때 정해진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늘 종업원과 고객에 대한 배려가 자리잡고 있었다. 월셋집 방 한 칸에서 일곱식구가 사는 택시 기사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고 일본에서 가장 먼저 직원들의 내집마련을 도와줬다. 장애인 우선 승차제도 처음 도입했다. 차 10대로 시작한 MK택시는 지금 2000대가 넘는 택시를 운행하는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백제인이 설립한 세계 최장수기업인 오사카의 건설업체 곤고구미의 사훈은 '남을 기쁘게 해주자'이다. 종업원 100여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지만 이런 배려의 정신으로 1400년 넘게 기업을 이어오고 있다.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사랑은 성공 경영을 뛰어넘어 장수기업의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김낙훈 중기전문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