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취임한 그렉 필립스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은 한국과 운명적 인연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주한 미군으로 복무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한강 이남지역 낙하산 침투 훈련에도 참여했다. 1980년대 초 미 2사단 항공단에서 UH60 헬리콥터 조종사로 근무했고,1988년엔 특수전 사령부에 배속돼 올림픽 경호업무를 했다. 1991~1993년 한미연합사령부 국장을 거쳐 한 · 미 협력 및 합작 투자 등을 담당했다. 1997년 대령으로 예편하기까지 26년 군 생활 중 절반에 가까운 12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1980년대 중반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한국 여인을 만나 결혼도 했다.

예편 직후인 1997년 대우자동차 미국법인 동남아 8개주 영업 총괄 매니저를 맡은 것도 한국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2006년엔 한국닛산 대표로 발탁돼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낙하산을 메고 숱하게 하늘에서 뛰어내릴 때 한국의 산하(山河)가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겼다"고 했다.

KOTRA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은 대략 1만5000여개다. 이들 기업 CEO 중에선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 꽤 많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자 작년 6월부터 보잉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팻 게인스 사장도 주한 미군 출신이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우등으로 졸업한 게인스 사장은 1970년대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공수특전대원과 파일럿으로 활약했다. 찰스 아리나 전 페덱스코리아 사장도 1979~1982년까지 주한 미군으로 비무장지대 근방에서 근무한 경력이 한국과의 인연이 됐다.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는 스튜워트 솔로몬 한국메트라이프 회장을 꼽을 수 있다. 미 시라큐스대를 졸업한 후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1979~1995년 한국외환은행 뉴욕지점에서 근무하기도 한 그는 한국말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 처음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한다. 솔로몬 회장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1996년 만들어진 '문월회'라는 도자기 동호회에 창립 멤버로 가입,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며 한국에 대한 정(情)을 키워가고 있을 정도다. 매월 모임을 갖고 분청사기 등 도자기 공부를 하거나,도요지(陶窯址 · 가마굽던 터)에 함께 답사를 간다.

존 워커 한국 맥쿼리그룹 회장은 작년 말 한국의 자연을 배경으로 동화책을 펴냈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는데 제목은 '우라의 꿈(Ura's Dream)'이다. 주인공인 반달곰 '우라'는 단군신화의 웅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유르겐 쾨닉 한국머크 사장은 2001~2008년 파키스탄에서 근무할 무렵 한국 영사와 가까이 지낸 것이 한국과 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2008년에 이사회에서 한국에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선뜻 결정했다.

그의 한국 사랑도 유별나다. 매년 회사에서 만드는 달력에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작가의 그림을 넣어 전 세계 64개국 지사 네트워크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