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대 본관.남녀 학생들이 총장실을 비롯한 4층 건물 곳곳에 돗자리와 매트리스 등을 깔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새우잠을 자는 학생부터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 학생까지 MT촌의 아침을 보는 듯했다. 총장실은 총학생회 회의실로 변했고 바로 옆 접견실의 테이블에는 먹다 남은 음료수와 음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비슷한 시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오연천 총장이 20여명의 본부 과장들을 긴급 소집했다.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총장이 이례적으로 과장들을 불러모은 것은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오 총장은 팀별로 업무 차질 여부를 점검한 뒤 "농성을 풀지 않으면 학생들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지난달 30일 저녁 학생들의 기습적인 본관 점거 이후 서울대의 행정업무가 나흘째 마비됐다. 학생들은 법인화 작업 중단 때까지 농성을 풀지 않기로 해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자율 훼손 vs 독립 경영 · 장학금 증가

학생들이 내세우는 법인화 반대 명분은 대학 자율성 훼손,등록금 인상 가능성,기초학문 기반 약화 등이다. 논의 과정에서 학생 참여가 부족하고 대학이 법인화되면 돈되는 학문만 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측은 '오해와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사회를 통한 의사결정으로 투명경영이 이뤄지고,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 자율 · 독립경영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남익현 서울대 기획처장은 "법인화가 되면 예산운영의 자율성이 늘고 수익사업도 쉽게 할 수 있어 등록금 부담을 줄일 수도 있는데 학생들이 너무 일부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4년 전체 국립대학(89개)을 법인화한 일본에서는 등록금이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 서울대법인화법은 또 '기초학문 등 필요한 분야의 지원 · 육성에 관한 4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 · 공표하고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 ·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남 처장은 "법인화법은 국회가 정한 법률이기 때문에 학교가 폐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학생들의 주장은 총장과 학교에 법을 어기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간강사료 지급도 어려워"

서울대 측은 과장급 전결 사항 외에 대부분의 결재 업무가 마비됐다고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 · 기획재정부 등 중앙 부처와의 공문수발업무 등도 중단된 상태다. 대학 대표전화도 불통돼 안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학금과 각종 비용 지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대는 1271명의 학생에게 지급해야 할 6억원의 장학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억원의 시간강사료(1437명)와 일용직 인건비도 묶여 있다. 여기에 196명의 연구원 임명도 늦어지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생들의 본관 점거가 장기화될 경우 학교 행정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대는 이날 긴급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법인화 작업은 계속 추진

서울대 측은 학생들의 농성과 관계없이 법인화 작업을 일정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법인설립추진단 관계자는 "학생들의 농성에도 불구하고 법인화와 관련된 시행령과 정관,학칙 제정 작업 등을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내년 초 법인 출범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호/강현우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