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한국 외교사에 큰 이정표를 세웠던 반기문 총장의 연임이 확정되면 국내외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한때 서구 일부 국가들이 "어디에도 없는 남자"라는 비아냥과 함께 반 총장을 강하게 견제했지만 반 총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으로 이를 극복했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와 기후변화 대책 논의,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반 총장의 '조용한 리더십'이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로부터 인정받은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역대 총장 대부분 연임

1945년 유엔이 출범한 이후 반 총장 이전에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은 모두 7명이다. 이들 중 반미 성향이 강했던 6대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를 제외한 6명의 사무총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부트로스갈리 전 총장은 탈냉전 시대에 미국의 글로벌 주도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으로 연임에 실패했다. 노르웨이 출신 초대 사무총장 트뤼그베 리는 소련이 임기 연장을 문제삼기도 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반 총장의 연임이 유력해진 것은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상이한 이해관계를 지닌 강대국 중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는 유연한 태도가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반 총장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신장한다"는 유엔의 설립 목적을 외교적 방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행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서방국가와 개도국 불만 모두 극복

반 총장은 취임 때부터 개발도상국과 옛 사회주의국가들로부터는 "친미적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고,영국 등 서방국가로부터는 "존재감이 없다"는 견제를 받았다. 이 같은 여러 국가로부터의 협공은 이번에 재선이 이뤄질 경우 '근거 없는 기우'로 판명나게 됐다. 오히려 반 총장은 특정 국가에 기울지 않은 업무수행으로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회원국의 신뢰를 얻는 길을 택했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평화유지 업무를 개혁하고 기후변화 협상을 주도한 점이 큰 평가를 받았다. 유엔 사무총장이 직면한 법적ㆍ제도적 각종 제약도 규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협상과 대화를 통해 최대한 극복했다는 평을 얻었다. 각국 외교사절과 유엔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스킨십 외교를 통해 거부감을 없앴다.

김동욱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