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사이즈의 작은 모니터로는 PC 수준의 작업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대용량 데이터를 배터리가 감당할 수 없다. 불안정한 운영체제로는 느린 속도와 오류를 개선하기 힘들다.”

애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날아가 버린 기존 스마트폰 개발자들의 인식과 한계다. 스마트폰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아이폰의 등장 이후 마치 거실에 놓여 있는 TV 같은 수준으로 변했다. 안정적이고 독자적인 운영체제인 iOS·앱스토어·아이튠즈로 무장한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를 ‘잡스신’으로 만들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 속도 역시 대단했다. 아이폰의 대항마로 나온 스마트폰, 특히 안드로이드 진영의 반격은 철옹성 같던 애플의 성역을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한국에선 이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활용하는 스마트폰 점유율이 아이폰의 점유율을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안드로이드마켓 통계 전문 사이트인 안드로립에 따르면 올 5월 현재 안드로이드 마켓에 등록된 애플리케이션은 29만 개에 달한다. 물론 40만 개의 앱스토어에는 못 미치지만 2009년 말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 마켓이 곧 앱스토어를 따라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의 독주가 끝나고 아이폰 대 안드로이드의 양강 체제로 돌아선 상태다. 디스플레이나 프로세서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콘텐츠 측면에서도 자웅을 가릴 정도가 됐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선 제조사가 고객과의 접점인 마케팅 전략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버전이 높고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신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체감하는 환경이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익숙한 제품과 브랜드에 손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경쟁적으로 빅(Big)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어떤 스마트폰을 고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광고하는 제품에 한 번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빅뱅’의 옵티머스원, LG 부활 신호탄

빅 모델 기용으로 혜택을 본 대표적인 사례는 LG전자다. LG는 스마트폰 시장에 애플은 물론 삼성전자보다 늦게 뛰어들었다. 급격한 시장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느리게 대응한 결과는 기존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인 LG의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최고경영자(CEO)까지 교체되는 등 내홍을 겪은 LG의 반격은 2010년 10월 출시된 ‘옵티머스원’을 통해 이뤄졌다. 옵티머스원은 공급 한 달 만에 일 개통 1만2000대를 기록하며 반격의 기틀을 잡은 일등 공신이다. 이는 기존 LG전자 휴대전화 중 최단 기간 판매 기록이다.

옵티머스원 TV 광고는 세계적 인기 캐릭터인 스머프가 등장해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 하는 말을 따라하는 콘셉트였다. 남녀노소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아이돌 스타의 등장은 ‘친근하고 쉬운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LG전자는 지금도 빅뱅 멤버들을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4.3인치 대화면 스마트폰 ‘옵티머스빅’의 모델로 등장해 ‘디스플레이를 빅뱅하라’는 카피로 넓고 커다란 화면을 강조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 모델인 빅뱅 외에도 탤런트 김사랑과 유아인을 내새워 ‘옵티머스블랙’을 광고하고 있다. 옵티머스 블랙은 두께 9.2mm, 무게 112g의 초슬림·초경량 모델이다. 요즘 인기 상한가를 달리는 두 배우의 세련된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이다.

‘갤럭시S’ 시리즈의 삼성전자는 빅 모델 전략과 노(No) 모델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최신작인 갤럭시S2는 요즘 가장 인기가 많다는 아이돌 가수 ‘아이유’가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삼성이 독자 개발한 ‘터치위즈 4.0’에서 손의 움직임을 통해 줌인·아웃이 가능한 ‘모션 줌’ 기능을 강조한 광고다. 아이유는 ‘대세’라는 평답게 갤럭시S2의 첫 번째 TV 광고 모델로 나섰다.

반면 작년 6월 갤럭시S의 첫 론칭 때는 무명의 광고 모델을 기용해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기도 했다. ‘슈퍼 유(Super You)’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 모델이 갤럭시S를 손에 쥐고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날아오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마치 할리우드 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슈퍼 영웅과 같은 모습이다. 이 광고는 현존하는 어떤 스마트폰보다 한 수 위라는 자존심을 강렬하게 표현해 시장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더욱이 “당신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세상이 만만해진다”는 카피는 애플을 따라잡아야 했던 삼성의 자신감 회복과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했다.

팬택계열의 ‘스카이’도 빅 모델을 선호한다. 2G폰 시장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선전하던 스카이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2위 싸움’을 벌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팬택계열의 스마트폰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제품은 ‘이자르’로 인기 탤런트 구혜선이 모델로 나섰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상한가를 치던 그녀의 등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콘셉트로 한 이자르와 잘 맞아떨어졌다. 이자르는 작년 한 해 25만 대가 팔려 팬택계열에서 나온 모델 중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년 한 해 팬택계열의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은 80만 대로 LG전자를 제치고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팬택계열의 빅 모델 전략은 작년 말 출시된 ‘베가2’와 얼마 전 나온 ‘베가 레이서’에 배우 이병헌이 등장하면서 계속되고 있다. 스카이 마케팅 담당자는 베가2 출시와 관련해 “월드스타의 반열에 들어선 이병헌의 존재감에 비견할 정도로 대단한 성능과 스펙을 지닌 프리미엄 제품”이라며 모델과 제품의 프리미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올 초 베가의 일본 수출을 기념하는 도쿄 행사장을 직접 찾아 현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빠른 처리 속도를 콘셉트로 하는 ‘베가 레이서’ 모델 역시 이병헌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4억 원 상당의 고급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경품 행사장(콘서트)에 직접 몰고 나타나는 등 홍보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애플은 철저한 ‘노(No) 모델’ 전략

빅 모델을 주로 써 소비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국내 기업에 비해 애플의 아이폰 광고는 알려지지 않은 무명 모델을 쓰거나, 심심할 만큼 덤덤한 기능 설명이 광고의 전부다. 심지어 단말기와 이를 터치하는 손가락이 화면의 전부인 광고도 있다.

초기 아이폰3GS 광고는 세세한 스펙이나 화려한 볼거리를 지양하는 대신, 철저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카피나 대사도 전혀 없이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엄마와 시집간 딸이 영상통화를 하는 식이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집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딸에게 나이든 엄마가 사랑과 연민의 표정을 짓는다는 콘셉트다. 이런 아이폰의 광고 전략은 전 세계가 똑같다. 대신 광고가 방송되는 각국의 특성을 반영(한복을 입은 딸)하는 식이다. 본사의 주관 하에 철저한 글로컬라이제이션을 따르는 시스템이다.

아이폰4가 나오면서부터는 그나마 등장했던 무명 모델도 사라졌다. 대신 확대된 단말기와 손가락 터치를 통해 동영상 편집, 음악 감상, 사진 관리 등 기능 위주의 심플한 광고가 선을 보였다. 다만 ‘당신에게 아이폰이 없다는 건’으로 시작해 결국 ‘이런 아이폰이 없다는 것’으로 끝나는 멘트는 한국인의 정서상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영어 문장을 번역기를 통해 돌린 것 같다”는 혹평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최근 전파를 탄 ‘아이패드2’ 광고가 비슷한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철학을 잘 녹여냈다는 평을 들으며 인기몰이 중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 BUSINESS 810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