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함께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 재단을 출범시키면서 미국 갑부들의 기부 서약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올 들어 이 재단의 기부 서약자들은 모두 69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이 약속한 기부금은 200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공개적인 기부 서약을 두고 보여주기 식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기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고,새로운 자선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부는 부자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개개인이 처한 여건에 따라 기부의 가치와 방법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영국에서는 부자나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기부가 오랫동안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돼 왔다. 영국인의 70% 이상이 한 달에 한 번은 기부에 참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자선 활동은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학교 로비에서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위해 자선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이나 옷가지를 내놓기도 한다. 매년 2월이 되면 영국 대학들에서는 오랜 전통의 '래그 윅스'(넝마 주간)라는 행사가 열린다. 대학생들은 다양한 대중 공연을 통해 자선 기금을 모은다. 평범한 주부들은 바자를 열거나 길거리에서 빵을 구워 그 수익금으로 복지시설을 방문하고,오히려 도움받을 처지에 있는 연금 생활자들이 푼돈을 모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놓는다. 또 해마다 스포츠 음악 코미디 등을 주제로 한 장시간의 TV 자선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달러의 기부금이 모인다. 이처럼 영국인의 생활 속에는 기부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이나 기관 차원의 기부는 많지만 개인들의 일상적인 기부는 영국보다 덜 활성화돼 있는 듯하다. 비록 특출한 재능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눈과 입,손을 활용하면 다른 누군가의 삶에 기쁨과 희망을 전해 줄 수 있다. 필자의 회사에서는 최근 시각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직원들이 직접 참여해 오디오북과 점자책을 제작했다. 직원들은 아이들이 혹여라도 놓칠세라 세계 명작집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심혈을 기울여 낭독하고 점자책을 만드는 데 손을 모았다. 한 직원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시각 장애 아이들이 꿈과 상상력을 펼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타인을 위한 행동이 결국 우리 삶에 더 큰 행복을 가져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다. 목소리와 손을 모았을 뿐이지만 그 정성과 사랑,그리고 헌신은 그 어떤 부자의 기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탈무드에 보면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초에 불을 붙여도 처음 그 초의 밝기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은 다른 사람과의 나눔을 통해 그 빛이 더 밝아지는 내 자신의 소중한 초가 무엇인지 한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리차드힐 < SC제일은행장 Richard.Hill@s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