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험천만 대북 비밀협상
남북한이 비밀히 남북 정상회담에 관해 협상해 왔음을 밝히면서,북한 정권은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을 구걸했다고 조롱했다. 그 얘기는 악의(惡意) 가득한 비방으로 보이지만,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지적은 정부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한다.

북한 정권과 교섭할 때,우리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며 그래서 결코 믿을 수 없는 집단임을 늘 고려해야 한다. 그런 부도덕성은 사회주의,공산주의,민족사회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의 특질이다.

전체주의는 지도자가 제시하는 하나의 사회적 목표에 사회의 모든 역량을 결집한다. 따라서 지도자의 지시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자연히 객관적 도덕이 존재할 수 없다. 지도자가 제시한 목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바로 그 사실에 의해 도덕적이고,방해가 되는 것들은 바로 그 사실에 의해 부도덕하다. 어제의 정설(定說)이 오늘의 이설(異說)이 되는 절차적 안정성의 결여는 거기서 나온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약속은 믿을 수 없다. 그들의 약속은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한 유효하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이 안은 위험은 6 · 25 전쟁의 휴전 협상에서 잘 드러났다. 협상 초기에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미국의 매튜 리지웨이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의 협상 전술에 노출된 적이 없는 서방 사람들에게,진실이 더럽혀지고 사실이 왜곡되는 정도에 대해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그 협상에서 초대 국제연합군 대표였던 터너 조이 제독은 그런 위험을 소상하게 밝혔다.

먼저,공산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세력의 확장을 노리며 협상을 통한 세력 확장과 무력을 통한 세력 확장을 구별하지 않으므로,협상을 통한 문제의 해결은 기대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협상의 모든 측면과 과정들을 철저히 계획한다. 그들은 기본적 목표에 유리한 결론들로 이루어진 일정을 추구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회담이 열리도록 시도하며,일단 회담이 열리면 자신들의 통제력으로 회담을 유리하게 이끈다.

공산주의자들은 늘 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한다. 특히 부분적 진실을 전체적 진실로 만드는 데 능하다. 아울러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어 상대의 입장을 약화시키려 애쓴다. 상대가 조금만 양보하면 그들은 상호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오히려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한다. 양보했다는 사실은 바로 상대의 약함을 뜻한다고 공산주의자들은 믿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제약하는 합의 사항을 되도록 지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나온다. 그래서 합의 사항의 범위를 되도록 줄이고,그런 합의 사항의 이행에 대한 감시와 조사를 허술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자신들을 제약하는 조건에 어쩔 수 없이 합의하게 되면,공산주의자들은 뒤에 그것의 이행을 실질적으로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조항을 넣는다. 그런 모든 전술이 실패해 합의 사항을 이행해야 할 처지가 되면,공산주의자들은 합의 사항을 재해석해서 이행을 피하려 한다.

이번에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에 보인 허점은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적 자산을 단숨에 얻고자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었을 것이다. 북한 정권이 그런 뜻을 순순히 들어주리라 생각했다면,현 정권은 북한 정권의 정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대통령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인 대(對)북한 정책을 훼손하지 않으려면,우리 당국자들은 북한 정권과의 협상이 왜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과의 협상은 되도록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만일 비밀히 진행해야 한다면,국회 지도자들에게 상황을 알려 북한 정권의 간계를 미리 막아야 한다.

복거일 < 소설가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