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차이파니(Chai-pani)'는 차와 물을 뜻하는 말이다. 인도는 우기가 집중돼 있어 건기인 평상시에는 먼지가 많다. 한 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름철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고 습하다. 이 때문에 찾아온 손님에게 설탕과 우유,향료로 진하게 끓인 따뜻한 차와 찬 물을 대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차이파니는 인도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관공서를 상대로 일처리를 할 때 거의 예외없이 들어가는 비용을 우회적으로 뜻하기도 한다. 말단 공무원에게 차 한잔을 대접하는 것부터 무기판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고위관리에게 거액을 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차이파니는 인도 문화에 깊숙하게 뿌리 내려져 있다. 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거나 없애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인도 관료제도와 차이파니는 상호 공생관계다. 인도의 오랜 봉건 정치 질서하에서는 군주나 영주를 알현하려고 올 때 자기 땅에서 수확한 것을 선물로 바치는 것은 신하나 백성의 당연한 도리였다. 오늘날에도 이런 문화가 남아 도움을 청할 때 꽃 한다발이라도 답례로 바치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고대 인도에서는 관리의 부정부패가 최소한 사회적으로는 용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에서는 부패한 부자들이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오히려 존경받기도 한다. 인도에서 신랑감을 평가할 때 가격이 정해져 있다. 일자리가 뇌물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일반행정분야 공무원은 세무서나 세관에 일하는 신랑감보다 결혼시장에서 낮은 대우를 받는다.

고위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졌을 때 시민단체,신문 등 언론은 차이파니 문화를 척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고위 정치인들만 부패한 것이 아니다. 경찰이나 건설 관련 부서 공무원,일반행정부서 등 고위층에서 말단까지 비윤리적인 행동이 만연해 있다. 민간부문,노동조합,전문가 집단,산업계에도 부패가 퍼져 있다. 인도의 한 대법관은 "판사의 약 20%가 썩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인도 경제가 1991년 개방되고 단계적으로 자유화되면서 정부의 재량권이 많이 줄었지만,정부를 둘러싼 부정부패는 그대로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인도의 부패 수준은 아프리카 보츠와나보다 심하고 라이베리아,자메이카,알바니아 등과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도의 지하경제 규모는 2008년 기준 6400억달러로 전체 경제의 절반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부정부패가 줄지 않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정부의 자원 배분에 대한 자유재량권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산 임대,주파수 배정,국유지 배정,사업자 선정 등 정부의 권한행사 과정이 불투명하다. 경제 자유화로 비즈니스계,정치권,관리들 간에 관계가 강화되면서 정실자본주의가 조장되고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정치인과 관료뿐 아니라 기업인이 부패사슬에 서로 얽매여 공생하고 있다.

연방 하원의석 중 어느 한 당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돈을 물쓰듯 한다. 인도 하원의원에 출마하려면 선거비용으로 최소한 4000만루피(약 90만달러)에서 4억루피가 들어간다. 선거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정당은 기업인들에게 손을 더 벌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철밥통'인 관료제도가 비즈니스계의 부정부패를 가져온다. 인도의 관료제를 지칭하는 '바부덤(Babudom)'은 기업계와 정치인을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 공무원들은 정년까지 약 35년 동안 근무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고 한다.

인도에서 부정부패를 줄이려면 뇌물을 주는 사람을 면책해 뇌물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뇌물을 원하는 자들이 뇌물을 받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이런 작은 변화가 인도 사회를 바꿀 것이다. 책임정치,선거 개혁,국유재산관리 투명성,제대로 된 옴부즈만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동석 KOTRA 뭄바이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