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곳곳에 고수(高手)가 있다. 경영에도,투자에도,심지어 연애에도 고수가 있다. 그러나 원래 고수는 오로지 몸으로 익힌 무예를 겨루는 무림의 세계에서 쓰는 용어다. 고수라는 말을 들으면 무협지가 떠오르고 중국이 생각나는 것은 그러니까 자연스런 연상이다. 고수의 나라인 중국의 비즈니스를 얘기할 때 통계적인 접근보다 경지에 오른 고수의 사례를 다루는 것이 어쩌면 더 배울 게 많을지 모른다.

13억 중국인 가운데 해당 분야 최고로 꼽히는 고수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전통을 잇고 있는 무림고수와 당대 최고의 한의사(漢醫師)를 만나보자.이들은 한국경제신문이 중화회(中華匯 · 회장 양재완)와 함께 이달 22일 개강하는 '중화아카데미'에 초청된 강사들이다.



#현존하는 무림 최고수 야오청룽

190㎝는 돼 보이는 거구들이 이 사람 앞에서는 주눅든 모습이다. 165㎝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몸집의 야오청룽(姚承榮) 선생(58)의 가벼운 손놀림에 나가떨어져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다. 용쓰며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또다시 나가떨어진 거구들은 중국식으로 손을 모아 인사하고 고개를 숙인다.

베이징에서 활동 중인 야오 선생은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무림 고수다. 현재 훈련을 받고 있는 러시아 특공대원을 비롯 프랑스 이스라엘 네덜란드 군인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베이징에 날아와 그에게 무술을 배운다. 그는 당대 무림을 주름잡았던 아버지(姚宗勳)의 뒤를 이어 '이취안(意拳)'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이취안'의 3대 전인(傳人)이다.

'이취안'은 정적인 단련을 강조하는 무술 문파다. 20세기에 창시된 현대 무술답게 실전을 강조하고 있고 보기에 따라 권투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실전 적용력이 높아 최배달의 극진 가라테에도 그 기법이 채택됐다.

야오 부자가 '이취안'을 배우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야오 선생의 부친은 원래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다른 무술을 배웠다. 그런데 당시 그의 스승이 '이취안'의 창시자인 왕 선생(王鄕齋)과 맞대결을 펼쳤다가 패함으로써 제자 전원이 왕 선생의 문하로 옮겨가 배우게 됐다. 야오 선생의 부친은 왕 선생으로부터 후계자(2대 전인)로 인정받아 역시 당대 무림고수들과 맞대결을 펼쳤다. 중국 무림의 주목을 받은 여러 싸움에서 연전연승하면서 무림고수로 뿌리를 내렸다.

"외톨이로 자라나는 아이들도 사실은 자기를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는 겁니다. 이취안이든 태권도든 뭐든 배워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 무술이 현대에도 의미가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

그는 "정말로 일반인들도 '이취안'을 배우면 서너 명과 대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하루 세 시간씩 1년간 꾸준히 수련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홍콩의 유명한 기업 CEO도 자신과 함께 부친에게서 '이취안'을 배운 사형이라고 소개한 그는 그러나 "'이취안'을 포함한 전통 무술이 중국에서 대접받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1960년대엔 정부가 '이취안'을 폭력배를 양성하는 불법 무술로 규정해 금지했고,야오 선생과 그의 부친은 1969년부터 5년간 농촌으로 내려가 노동자로,농민으로 생활해야 했다.

그는 "아버지와 둘이서 몰래 무술연마를 계속하면서 이런 어려움이 있을수록 무술연마에 힘을 써야 전통무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와신상담의 세월이 지나 "지금은 10여개국에서 매년 30여명씩 배우러 오는 국제적인 무술로 커 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선 강적들뿐만 아니라 시대와도 싸워야 했던 고수의 숙명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야오 선생은 아직 정정한 나이지만 아들(姚悅)을 4대 전인으로 삼아 '이취안'의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해가면 갈수록 세계인들이 중국의 전통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최강의 권법으로 자리매김한 '이취안'을 전 세계인의 생활 무술로 만들어가는 것이 꿈"이라며 웃었다.


#중국 황실명의의 후손 쿵링첸 원장

베이징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쿵이탕(孔醫堂)은 이름에서부터 자부심이 느껴진다. 공자(孔子)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실제 이 병원의 원장인 쿵링첸(孔令謙)은 외국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공자의 76대손임을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그의 가족 내력을 보면 먼 조상인 공자에 비해 훨씬 빛나는 이름들이 있다. 그의 조부인 쿵보화(孔伯華)는 살아 생전에 중국 4대 명의로 꼽혔고,아버지 쿵사오화(孔少華)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명의였다. 황실 명의의 집안으로 조부는 마오쩌둥과 주언라이의 주치의를 지냈다.

쿵 원장은 이들에 비하면 당연한 얘기지만 '신세대'다. 칭화대에 강의를 나가고 TV프로그램 진행도 하면서 쿵이탕을 상장시키는 데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쿵 원장의 진료는 중국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게 특징이다. '쿵보화 문화유산'의 공식 전승자로서 중국 한의학 전파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받았다. 특히 음식을 통한 양생(養生)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병원은 2개로 왕징지역 병원이 본점으로 면적이 3200평에 달한다. 총 60명의 노 한의사들과 젊은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병원 2개를 더 낼 계획이다.

쿵 원장은 현대적 기계를 별로 쓰지 않는 대신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진맥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의 꿈은 세계적인 한의원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그룹처럼 발전시켜 현대적 고급 의료서비스도 제공하고 연구개발,교육 등을 3대축으로 사업해나갈 계획"이라고 쿵 원장은 말했다.

쿵 원장을 소개한 양재완 중화회 회장은 "중국의 경우 이미 상류층들이 서양의가 아니라 다시 중국 고유의 치료법을 찾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며 "21세기 화타(삼국 시대의 명의)들이 중국의 자존심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