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의 하나는 '주주권 강화'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지난 4월26일 개최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및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곽승준 위원장이 촉발시킨 논쟁이다.

곽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제안했다. 목적은 "대기업의 거대 관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 ·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문제 해결,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도 주주권 행사의 주요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서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와 같은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기업 견제가 국민연금의 역할?

곽 위원장 발언 이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한 대기업 견제론'은 초과이익공유제와 함께 현 정부 대기업 정책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 교수는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는 운용수익률을 극대화해 가입자의 편안한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지 대기업을 견제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수익률 제고의 한 수단으로 대기업 견제를 생각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본말이 뒤바뀐 사고"라고 비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주가를 올린다?

곽 위원장의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론에는 동반성장,기업지배구조 및 사회적 책임 등의 문제도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접근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른바 사회적책임투자(SRI)를 실현하기 위해 주주권을 통한 기업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예로 들고 있는 것이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인 '캘퍼스(CalPERS)'로,이 연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투자기업의 주가가 올라갔다고 내세운다.

학계에서는 반대이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예일대 법경제학자인 로베르타 로마노 교수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와 기업의 성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윤 교수도 "SRI나 ESG(환경 · 사회적책임 · 지배구조)와 기업가치 및 주가와의 상관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는 여전

재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표면적으로 "주주의 당연한 권리"라며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압박을 느끼는 분위기다. 정부가 국민연금이라는 자본시장의 거대 세력을 앞세워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연금 사회주의'의 우려가 여전히 상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주권 행사의 의미가 단순히 의결권뿐만 아니라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이사해임 청구 등 주주총회 안건을 상정하는 주주제안과 궁극적으로 주주소송제도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서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연금이 가입자를 위한 수익성 확보는 등한시한 채 정부 눈치를 보며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대리인 문제'의 소지도 크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어떤 신사업에 투자해라 또는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꾸라고 하는 것은 마치 아마추어가 프로선수에게 훈수를 두는 격이 될 것"이라며 "주주권 행사는 결국 기업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게 되고 관치논쟁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윤성민/조재희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