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새벽 5시50분 서울 여의도공원.60여명의 중년 남녀가 모였다. 간단한 준비운동과 팔굽혀 펴기 50번을 마친 뒤 여의도공원을 뛰기 시작했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66)을 비롯한 임원 및 부서장들이다. 여의도공원 두 바퀴,5.2㎞를 30분 만에 주파한 이들은 다시 팔굽혀 펴기를 50번 한 뒤 하나대투증권 건물로 향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출근 시간이 빠른 것으로 유명한 증권맨들의 아침이 더 빨리 시작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원들과 아침 운동을 함께하며 여의도에 건강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어서다.

운동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김 사장은 '불수도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매년 여름이면 불암산과 수락산,도봉산,북한산을 직원들과 무박 2일(16시간)로 오르면서 생겨난 말이다. 분기마다 열리는 경영전략회의에는 '한국의 명산을 찾아서'라는 별칭이 붙었다. 임원부터 지점장까지 200여명이 유명한 산의 정상에서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현대증권 사장이던 김 사장이 하나대투증권으로 옮겨올 때 현대증권 임직원들이 하나대투증권 임직원들에게 "내 등산복 사가라"고 농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58)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운동 마니아'다. 하프마라톤을 7차례 완주한 경험이 있는 황 사장은 사내에 '여깨모(여의도를 깨우는 모임)'라는 달리기 동호회를 만들었다. 올 1월4일 발족한 여깨모는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6시에 모여 여의도공원 주변을 5㎞ 달린다.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59)도 매년 1월 신입사원들과 함께 40㎞ 야간행군을 한다. 오대산을 출발해 주문진 하조대까지 오르는 무박 2일 코스다. 응급상황을 대비한 구급차가 뒤따르는 야간산행에서 신입사원이나 동행한 일부 임원이 낙오하는 경우는 있지만 노 사장은 매번 코스를 완주한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증권업계 CEO들이 직원들과 함께하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증권업의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매일 증시를 들여다보며 피를 말리는데다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종인 만큼 스트레스 관리는 물론 몸매 관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2006년 현대증권 사장 재직 시절 아끼던 영업부 직원이 잦은 술접대 등으로 과로사한 것을 본 뒤부터 운동 전도사로 나섰다는 후문이다.

열혈 CEO가 앞장서지만 참가율은 역시 자율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황 사장의 여깨모는 참가가 자율이다 보니 참여 인원이 20여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김 사장은 매번 출석 체크를 하는 것은 물론 대열 가장 뒤에서 뛰며 낙오 여부를 감시한다. 산 정상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어야만 완등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다 보니 참여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노경목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