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테크윈 경영진단(감사)에서 임직원 비리가 적발된 것과 관련,"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되고 있다. 부정을 뿌리뽑아야 한다"며 경영진을 강하게 질책했다. 작년 3월 경영 복귀 이후 이 회장이 외부의 위기를 언급한 적은 많았으나 내부를 겨냥해 질책한 것은 처음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 회장의 질책을 느슨해진 그룹의 '군기잡기','일벌백계(一罰百戒)'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와 대대적 인적 쇄신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 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출근,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으로부터 지난 3~5월에 실시한 삼성테크윈 경영진단 결과를 보고받은 뒤 조직의 기강 해이를 강도 높게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해외의 잘나가던 회사들도 조직의 나태와 부정으로 주저앉은 사례가 적지 않고,삼성도 예외가 아니다"며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앞으로의 대책도 미흡하다"고 질타했다.

이어 "전 조직 구성원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며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감사인력을 더 확보해야 하며,(감사팀을) 회사 내부에서 완전히 별도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실장이 8일 오전 수요사장단회의에서 이 회장의 질책을 전달한 직후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이 임직원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삼성테크윈은 조만간 임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후임 대표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임직원 비리로 중도 사임한 것은 2007년 이우희 에스원 사장 이후 처음이다.

이 회장이 격노한 삼성테크윈 임직원 비리와 관련,삼성 측은 "사회적 통념상 그렇게 크지 않은 부정"이라고 설명했다. 테크윈 경영진단에서는 사적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하거나 협력사로부터 금품,향응 등을 받은 부정 행위가 많이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외부에서 상상하는 큰 비리는 아니고 광범위하게 비리와 부정이 있었다"며 "이 회장이 신경영 선언 때부터 조그만 부정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그게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화를 엄청 냈다"고 전했다.

삼성은 조만간 모든 계열사의 조직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결과에 따라 큰 폭의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