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차별 복지의 인질로 전락해가는 20대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광화문 촛불시위가 벌써 열흘을 넘었다. 여야가 제각기 학생들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은 터라 뒤로 물리기도 어렵게 됐다. 게다가 대학들이 등록금 남는 돈을 제멋대로 적립금으로 전환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추가 기우는 모양새다. 재원 대책이 있건 없건,등록금을 상당한 수준으로 내리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반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표만 얻으면 그만이란 식으로 논의가 치닫고 있으니 반값 등록금도 아까운 대학 부실교육,정원의 절반도 못 채우는 부실대학,절반을 백수로 만드는 반토막 취업률 등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빌미는 정치권 스스로 제공했다. 여야는 서로 반값 등록금 원조라고 주장하며 경쟁적으로 촛불에 기름을 붓고 있다. 한나라당은 4 · 27 재 · 보선 참패 후 캐비닛 속에 넣어둔 대선공약을 꺼내 논란을 자초했고,민주당은 촛불시위에 놀라 단계적 시행을 내년 전면 시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것이 내년 총선 ·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을 꿈꾸는 양대 포퓰리즘 정당의 현주소다. 짝퉁이 짝퉁을 베끼고,합리적인 정책 경쟁이 아니라 누가 감언이설을 더 잘하는가를 겨루는 판국이다. 대중민주주의의 파국을 증명하자는 꼴이다.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은 당장 발등의 불이지만 정작 20대가 겪을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 20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2050년께면 국민연금이 바닥난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2060년으로 예상했지만 급속한 고령화 · 저출산에다 운용수익률 하락으로 그 시기가 10년가량 앞당겨질 것이란 분석은 8일자 한경에 보도된 그대로다. 보건복지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인구변수는 긍정 · 부정적 효과가 모두 있고,수익률 변화가 기금 소진시기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친다고 주장하지만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인터뷰 때마다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 소진시기를 9년 늦출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것은 헛소리가 아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복지확대와 조세부담 증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복지의 혜택만 강조할 뿐 세금 늘어난다는 얘기는 뒤로 감춘다. 3+1복지(무상급식 · 보육 · 의료+반값 등록금)를 추가 세금 부담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공짜로 애 키우고,공짜로 밥 먹고,공짜로 진료 받고 대학도 반값에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더라도 2050년이면 GDP의 46%를 복지재정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추산이 이미 나와 있다. 국민 세금과 사회보장기금 부담액을 GDP로 나눈 국민부담률은 현재 25.6%로 OECD 국가 중 밑에서 다섯 번째로 낮다. 그러나 북유럽 복지강국처럼 가려면 국민부담률이 지금 당장 40~50%가 돼야 한다. 세금이 1.5배로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노무현 · 이명박 정권에서 각기 100조원 이상 늘어난 국가채무는 작년 말 4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모두가 젊은 세대가 짊어지고 나갈 빚이다.

20대 청년들은 눈앞의 복지 사탕발림에 취해선 안 되는 세대다. 과거 어떤 세대보다도 앞선 세대들에게 착취당할 수밖에 없게끔 짜여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 · 고령화로 인해 후세는 줄어드는 반면,부양해야 할 노인 세대는 늘어난다. 20년 뒤면 20대 1명당 노인 1.5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현행 조세 및 복지 구조를 유지하더라도 지금 20대는 평생 1억4300만원을 국가에 내야 하고 지금 5세 아동은 무려 4억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은 80%에 달하는 대학 진학률을 더욱 높일 것이다. 대학을 안 간 20대라면 자신이 낸 세금으로 등록금 지원하는 것을 찬성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예 대학 무상교육 요구가 나올 게 뻔하다. 그때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더 안 되고,간신히 직장을 구해봐야 월급에서 학자금 대출 이자 떼고,세금은 갈수록 늘어난다.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노후에 받을 기약도 없는 게 지금 20대인 것이다. 20대가 진정 촛불을 들어야 할 것은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앞선 세대의 착취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