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보는 삼성의 이미지는 차가운 편이다. 세련되고 정교하지만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내부 분위기는 의외로 부드럽고 정겹다. 구조조정이나 보직변경 인사를 할 때 칼로 무 자르듯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그럴 때도 인간적인 배려를 할 때가 많았다.

◆당혹스런 신세대 직원들

그래서 이번 삼성테크윈 사태를 지켜본 임직원들은 무척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특히 과거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대 직원들은 서슬 퍼런 그룹의 인사조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삼성 임직원들은 이 회장의 존재 자체로 외경심과 두려움을 갖는다. 그런 인물이 격노했다는 사실은 그룹 전체에 충격파를 몰고올 수밖에 없다.

8일 기자들에게 전후 배경을 설명하는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의 표정도 무척 어두웠다. 그동안의 관행과 통념에 비춰볼 때 삼성그룹 홍보 책임자가 내부 비리에 대해 이 회장의 질책 내용까지 세세히 밝힌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그룹 관계자는 사태의 전말에 대해 "외부에서 상상하는 것처럼 커다란 비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자질구레한 것이 여러 건 드러난 데 이어 이를 적당히 넘기려는 관행이 생겼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작은 부정이 모여 조직을 흔든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이날 열린 수요사장단회의에서 계열사 사장들에게 전한 내용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 실장은 "감사를 아무리 잘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 그룹 구성원에게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는 이 회장의 질책을 가감없이 전했다. 또 "우수한 감사 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 자질도 높여야 한다"는 지시도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이미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할 때 "작은 부정이 모여서 조직을 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 조직에 작은 부정들이 조금씩 생겨나는데도 '관행' 또는 '현실적 필요' 등을 핑계로 묵과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데 대해 이 회장이 진노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때마침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지난 7일로 18주년을 맞았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감사 결과를 보고받으면서 화를 많이 내셨다고 한다"며 "일벌백계를 통해 기강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숨죽인 계열사들

이 회장과 함께 김순택 실장이 향후 어떤 수습책을 꺼내놓을지도 주목된다. 김 실장은 비서실 감사팀 과장만 7년여를 지냈다. 1978년 8월 소병해 당시 비서실장에게 발탁돼 감사팀 과장을 맡았고 그후 1985년 12월 비서실 운영팀으로 옮길 때까지 그룹 감사의 실무를 총괄했다. 또 1990년 비서실 경영지도팀장(감사팀장)으로 복귀해 1991년 이 회장을 수행하는 비서팀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다시 1년간 감사 업무를 맡았다. 감사 업무에 관한한 그만한 전문가가 드물 뿐더러 이 회장의 심중도 가장 잘 헤아릴 수밖에 없다.

김 실장은 감사팀 과장 재직 시절 임직원들에게 '저승사자'로 통했다. 조그만 비리도 용서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거래처에서 와이셔츠 상품권 한 장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자 해당 직원을 곧바로 잘랐던 그다. 당시 출근할 때마다 머릿속에 '바를 정(正)'자를 그렸다고 한다.

삼성 내에서는 김 실장의 이 같은 성향을 감안할 때 조만간 계열사별로 감사 조직을 재정비한 뒤 전면적인 비리 감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기회에 '삼성헌법'으로 불리는 업무 매뉴얼도 재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의 집요한 성향에 비춰볼 때 이번 지시가 일회성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까지 계열사별로 쇄신을 위한 움직임들이 숨가쁘게 펼쳐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