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m짜리 초대형 벽화…완성하는데 4년 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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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LIG연수원에 설치회화 작업한 이상남 씨
"제 그림은 자연의 물상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아요. 인간이 창조한 형상이 그 출발점입니다. 요즘 미디어 아트와 사진 장르가 득세하지만 회화도 끊임없이 연구와 실험이 가능한 장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경남 사천시 대진리 일대 12만㎡(4만여평)에 들어선 LIG손해보험 연수원.교육관과 숙소 건물을 잇는 유리 통로에 36m 길이의 벽화를 완성한 이상남 씨(58)는 "설치적 회화의 진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로 2m,세로 2.5m의 150㎏짜리 철판 18개(5.5t)를 연결한 벽화의 제목은 '풍경의 알고리즘'시리즈.그는 여기에 사계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바람-대나무-섬'을 부제로 붙였다.
"미국 화가 재스퍼 존스의 '포시즌'을 보고 언젠가는 사계절을 회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광포만의 갯벌 풍경을 보고는 바로 이것이구나 했죠."
그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이미지를 추잉(씹다)하는 시대에 매혹의 블랙홀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빨간색으로 작품 바탕을 깔고,자연의 기하학적 원근을 여러 개의 도형으로 화면에 재현하듯 풍경의 알고리즘을 펼쳤다. 밋밋하던 공간에 회화와 디자인,기호로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유리 통로가 역동적인 캔버스로 변신했다. 패널에 자동차 도료를 수없이 덧칠해 완성한 이미지들은 아래에서 위로,위에서 아래로 보는 시점에 따라 혹은 자연광과 조명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다가온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기억의 충돌을 통해 '매혹의 블랙홀'을 제시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기업 건물에 미술품을 설치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건축 이전 단계부터 예술가가 참여하는 미술관급 프로젝트로는 처음입니다. 통로에는 자외선 차단유리를 쓰고 별도의 냉난방 시설도 갖췄어요. 설계도를 미리 받아 작업했죠.건물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고려한 '설치적 회화'입니다. 회화가 건물의 부속품이 아니라 건축과 동등한 무게감을 갖도록 했지요. "
그는 '풍경의 알고리즘'이란 테마로 모든 회화적 요소를 압축하고 정련,추상화한 원과 선을 2차원적 공간에 수렴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미학 세계를 선보이며 뉴욕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내년에는 서울과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