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대검 중수부가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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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밤 자정이 조금 못된 시간.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의 10개나 됨직한 사무실에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P검사에게 전화했더니 아직 사무실이었다. "힘드네요. "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육체적으로도 당연히 피곤한 시간이겠지만,정신적인 피로감이 더해 보였다. "욕까지 얻어먹으면서 가정도 팽개치고 왜 늦게 다니냐"며 아내까지 바가지를 긁어댄단다. 평소 그답지 않게 흥분해 있었다. "열심히 해서 보여줘야죠." 독백처럼 들린 그의 말 속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지난 6일을 기점으로 저축은행 수사는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 소위원회의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합의에 맞서 "수사로 말하겠다"며 결전 의지를 천명했다. 거악 척결,권력형 부패 청산으로 대변되는 중수부의 존재 이유를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보여주겠다며 사개특위에 던진 도전장이었다. 때마침 이날 청와대까지 나서 "중수부 폐지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김 총장 어깨를 가볍게 했다. "수사 못해 먹겠다"며 당장 짐을 쌀 것 같았던 중수부 검사들은 이날 이후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
P검사도 저축은행의 비리 혐의를 입증할 물증을 찾느라 거의 매일 밤을 새우고 있다고 했다. 인품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 모르긴 해도 "그만 고생하고 변호사 개업해서 돈이나 버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친 나날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부패수사에 전념하겠다"는 검찰총장의 충정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서슬퍼런 칼날도 녹이 슬 수 있고,엉뚱한 데를 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일본에서는 오사카 지검 특수부 소속의 주임검사가 구속돼 '특수부 폐지론'까지 거론된 일이 벌어졌다. 장애인단체에 허위증명서를 만들어준 혐의로 후생노동성 국장까지 연루된 사건이다. 그런데 주임검사가 검찰 측 시나리오에 짜맞추기 위해 압수품인 플로피 디스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법치에 관한 한 우리의 형님뻘인 일본에서,그것도 검찰 내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특수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에게서 전관예우의 실태와 관련한 실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수임사건이 한 달에 한 건 정도로 많지는 않으며,해도 해도 안 풀리는 사건이 주로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로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그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제발 원칙대로 수사해달라"고 후배검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 정도 역할만 해 줘도 의뢰인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그의 말을 뒤집어 해석하니 검찰의 현주소가 나타났다. A라는 혐의를 뒤지다 안 나오면 별건인 B혐의를 찾아내는 일이 다반사인데,이를 자제시키려면 전직 고위간부 정도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이제 중수부 폐지는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표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읽어내는 정치인들이 여야간에 합의한 내용을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향배를 점칠 수 있다. '스폰서 검사''그랜저 검사'로 검찰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면서 중수부 폐지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게 불과 몇 개월 전 일이다. 마찬가지로 민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아침에 검찰을 등질 수도 있다. 중수부가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김병일 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
지난 6일을 기점으로 저축은행 수사는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 소위원회의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합의에 맞서 "수사로 말하겠다"며 결전 의지를 천명했다. 거악 척결,권력형 부패 청산으로 대변되는 중수부의 존재 이유를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보여주겠다며 사개특위에 던진 도전장이었다. 때마침 이날 청와대까지 나서 "중수부 폐지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김 총장 어깨를 가볍게 했다. "수사 못해 먹겠다"며 당장 짐을 쌀 것 같았던 중수부 검사들은 이날 이후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
P검사도 저축은행의 비리 혐의를 입증할 물증을 찾느라 거의 매일 밤을 새우고 있다고 했다. 인품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 모르긴 해도 "그만 고생하고 변호사 개업해서 돈이나 버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친 나날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부패수사에 전념하겠다"는 검찰총장의 충정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서슬퍼런 칼날도 녹이 슬 수 있고,엉뚱한 데를 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일본에서는 오사카 지검 특수부 소속의 주임검사가 구속돼 '특수부 폐지론'까지 거론된 일이 벌어졌다. 장애인단체에 허위증명서를 만들어준 혐의로 후생노동성 국장까지 연루된 사건이다. 그런데 주임검사가 검찰 측 시나리오에 짜맞추기 위해 압수품인 플로피 디스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법치에 관한 한 우리의 형님뻘인 일본에서,그것도 검찰 내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특수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에게서 전관예우의 실태와 관련한 실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수임사건이 한 달에 한 건 정도로 많지는 않으며,해도 해도 안 풀리는 사건이 주로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로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그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제발 원칙대로 수사해달라"고 후배검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 정도 역할만 해 줘도 의뢰인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그의 말을 뒤집어 해석하니 검찰의 현주소가 나타났다. A라는 혐의를 뒤지다 안 나오면 별건인 B혐의를 찾아내는 일이 다반사인데,이를 자제시키려면 전직 고위간부 정도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이제 중수부 폐지는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표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읽어내는 정치인들이 여야간에 합의한 내용을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향배를 점칠 수 있다. '스폰서 검사''그랜저 검사'로 검찰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면서 중수부 폐지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게 불과 몇 개월 전 일이다. 마찬가지로 민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아침에 검찰을 등질 수도 있다. 중수부가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김병일 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