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는 곧바로 후려치기로 간주되고 조사에 들어간다. 엊그제 현대차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 착수가 그런 경우다. 단가 인하가 곧바로 후려치기로 둔갑하는 것이 지금의 마녀사냥이다. 정운찬 위원장도 엊그제 기업의 임직원 평가 체계부터 바꿔야 납품가를 둘러싼 논란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과 1,2년 실적으로 평가받는 직원들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납품 단가 인하는 기업의 지극히 정상적인 경영 행위다. 마른 행주도 쥐어짜는 것은 기업경영의 본질 중의 본질이다. 후려치기 논란은 가격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만일 납품가를 깎고 또 깎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여유 있는 단가야말로 정 위원장이 말하는 초과이익이 되고 그만큼 비리와 특혜가 형성된다. 초과이익의 크기에 비례해 납품업체 간의 경쟁이 약화되기 때문에 필시 부패가 생겨난다. 룸살롱이 붐비는 것이 저축은행 때문만은 아니다. 온정주의적이며 갑의 재량이 큰 사회가 부패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원리 때문이다. 우리가 수의 계약을 배제하고 공개경쟁 입찰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작은 부패가 더 큰 구조적 부패를 만들어낸다며 분노의 질책을 내놓은 어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적도 그런 것이다. "삼성에서 어떻게 부패가 나왔는지"를 질책 받은 회사는 삼성테크윈이다. 방산 회사이며 방산의 특성상 이 회사는 전후방 납품사슬에서 비경쟁적 요소가 많다. 룸살롱에 대한 유혹이 구조적이다. 결국 단가는 불투명하게 매겨지고 높은 수준의 도덕적 압력에 직면할 필요도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당장 협력업체의 만족도가 좋게 나오고 동반성장지수가 높게 나올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혁신 동기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소비자의 이익은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객관적 기준이나 성과지표가 없어지면 재량이 넘쳐나고 부패가 독버섯처럼 들어설 것은 자명한 이치다. 납품가 후려치기를 없애면 룸살롱 경기가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