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2년 전 세계를 휩쓴 신종플루 공포에 이어 최근에는 원인불명의 슈퍼박테리아인 장출혈성대장균(EHEC)이 유럽 대륙을 덮쳤다. EHEC뿐 아니라 항생제에 내성을 갖춘 각종 슈퍼박테리아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사스(SARS ·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구제역 같은 신종 전염병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유럽 다시 덮친 원인불명 전염병

독일 일간 디차이트는 9일 "유럽에서EHEC 사망자가 31명을 기록했고 감염자 수는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발생 지역도 진원지 함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심한 설사와 장출혈,구토 등의 증세를 보이는 EHEC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수는 독일을 방문했던 스웨덴 여성 사망자 1명을 포함해 31명으로 늘어났다. "EHEC 감염 환자가 급증하면서 독일 내 격리병동이 한계상황에 직면했다"(슈피겔)는 지적이다.

한 달 이상 EHEC가 유럽 보건당국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지만 발병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집단 발병 초기엔 EHEC 바이러스에 감염된 스페인산 오이가 발병원으로 지목됐다 부정된 후 샐러드용 콩류 새싹이 오염원으로 의심받기도 했다. 독일 보건당국은 최근 국적불명 오이에서 병이 퍼진것으로 의심하다 10일에는 다시 새싹 채소가 유력한 발병원이라고 발표했다.

◆신종플루 · 사스 등 이어지는 공포

독일 EHEC 사례처럼 2000년대 들어 세계 각지에서 신종플루 · 사스 · AI 같은 신종 전염병 유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500만명이 전염병에 희생되고 있다.

WHO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30종의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했다. 이처럼 신규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느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과거 풍토병이던 바이러스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점을 꼽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는 4000여종이며 그 중 100여종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 교역과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향토병'이던 바이러스의 세계화가 빨라졌다는 설명이다.

다른 일반 미생물보다 돌연변이 속도가 100만배 빠른 바이러스가 항생제 등 의약품에 저항하면서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점도 전염병 위협을 키우는 요인이다. 2004년 아시아를 강타한 AI의 경우,매년 사망자가 두 배 가까이 늘 정도로 독성이 강해지고 있다. 2004년 32명이었던 사망자는 2007년 175명까지 늘었고 올 2월에는 중국에서만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커지는 경제피해

신종 전염병에 의한 경제적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이번에 유럽에서 발생한 슈퍼박테리아로 유럽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독일 정부가 오이 토마토 등을 날것으로 먹지 말 것을 권고하고 독일 덴마크 룩셈부르크 헝가리 스웨덴 러시아 등이 잇따라 유럽산 오이 등을 수입금지한 탓이다.

유럽 최대 채소 생산국가인 스페인의 농가들은 유럽 각국의 수입금지 조치로 1주일에 평균 2억유로(3100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농민협회도 "오이 판매가 90% 가까이 급감하면서 출하된 오이가 퇴비로 쓰이고 있다"며 "채소농가 피해가 하루 최소 400만유로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2003년 사스로 인한 세계 경제 피해 규모는 180억달러에 달했다(영국 일간 인디펜던트).2009년 전 세계에서 1만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신종플루에 대해 미 질병예방통제소는 "미국에서만 713억~1665억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