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기업체에서 퇴직한 50대 중 · 후반의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은퇴에 대한 상담 기회가 있었다. 은퇴 후 노후생활비로 얼마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부분이 월 200만~300만원 정도를 예상했다.

과거 여러 설문조사에서도 우리 국민 중 과반수 정도가 월 200만원 정도의 노후생활비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과 비슷했다. 물론 월 생활비를 400만원에서 심지어 1000만원까지 예상하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있긴 했다.

은퇴준비 상황을 점검해 보니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첫째,은퇴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은퇴자가 음악에 관심이 있어 학원에 다니면서 기타를 배우고 있는 것 말고는 참석자 대부분이 등산이나 골프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째,은퇴 이전과 같이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생계형'이나 혹은 '소일거리형'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하지만 막상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셋째,은퇴 후 주거 계획에 대해서는 △'전원주택에서 살겠다'가 35%로 가장 많았고 △실버타운 30% △내집 20% △기타 15%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막연한 계획으로 대부분은 자신의 생활스타일에 적합한 주거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신에게 맞는 연금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즉 국민연금을 몇 세부터 어느 정도를 타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절반이 채 안 됐다. 심지어 중간 정산으로 퇴직금을 써버린 탓에 퇴직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개인연금은 전체 참석자 중 20% 정도가 가입하고 있지만 만기가 되면 얼마의 연금을 타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결국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세 가지 연금이 은퇴 생활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교육받은 경험이 아예 없었다.

은퇴 준비에 대한 우리의 실상이 어떤 수준인지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큰 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내고 퇴직한 사람들조차 자신의 연금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베이비 부머의 노후 준비가 취약하다'는 각종 분석결과를 내는 것조차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은퇴 생활을 위해서는 자산을 연금화해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여러 참석자들이 노후에 매월 생활비가 필요한 것은 동의하지만 개인연금과 같은 금융상품을 이용해 연금 자산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답을 했다.

이보다는 자신이 직접 금융상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마련하거나 수익형 부동산의 임대수입으로 은퇴생활비를 충당하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은퇴 이후 매월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연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재산을 연금화하는 일은 싫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연금에 대한 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