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시황 전문가와 투자전략가들은 시장을 예측해 이기려 한다. 하지만 가치투자의 대가인 워렌 버핏은 기업 연례보고서는 읽지만 다음주,다음달,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은 읽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가치투자자는 불확실한 미래의 전망이나 트렌드에 대한 예측보다는, 오직 '싼가 싸지 않은가'로 접근한다. 자산의 가격이 싼지 안 싼지를 '성장성,수익성,안정성' 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합리적 주가 수준,'성장의 함정' 경계

현재 증시를 성장 · 수익 · 안정성 등 세 가지 관점에서 평가해 보면 향후 큰 기대를 갖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크게 하락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먼저 안정성인 자산가치 측면에서 보면 현재 코스피 시장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2배 수준으로 1992년 이래 역사적 평균인 1.12배보다 높아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국내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증대되었음을 감안할 때 과도하게 고평가된 수치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수준은 과거 주식시장이 정점에 있었을 때보다 현저히 낮고,2006년 때의 수치와 비슷해 합리적인 범위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두 번째,수익성은 상장기업의 이익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수치인 기업의 이익률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올해 상장 기업들의 예상이익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값은 8.5% 정도로 부동산이나 채권에 비해 4~5% 정도의 초과 이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무위험자산 대비 2배 이상의 이익률을 낸다는 점에서 주가는 추가 상승여지가 있는 매력적인 수준이라고 보여진다. 올해 이익이 전망치대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수익성 측면에서도 현 주가 수준은 합리적이다.

세 번째 성장성 측면에서 보면,글로벌 경기 둔화 영향으로 올해 주요 상장기업의 이익성장률은 2009~2010년에 비해 둔화될 전망이다. 최근 특정 업종이나 테마에 미래 성장성이 부각되면서,성장성에 따라 주가도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는 이런 미래에 대한 낙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모두 현실화되는 최상의 상황에서도 투자수익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성장의 함정'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현재의 주가가 성장을 모두 반영하고 있을 경우,기대가 현실이 돼도 주가는 정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2000년 IT버블 때 주가가 크게 급등했다가,이후 실제로 이익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오히려 하락한 SK텔레콤이 '성장의 함정'을 대표하는 예가 될 것이다.

종합해 보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기준으로 주가는 너무 비싸지도,너무 싸지도 않은 합리적인 수준에 형성돼 있다. 현재 수준에서 주가가 의미있게 상승하기 위해서는 성장성의 부각이 필요하지만 현재 성장 모멘텀은 감소하는 국면이다. 따라서 일부 업종에서는 주가에 성장성이 과도하게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현 수준에서의 추가 상승이나 추세적인 하락 양쪽의 가능성이 모두 낮다고 할 수 있다.

◆'사막에 핀 꽃'을 찾듯…

최근 들어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지탱해온 공공부문의 유동성 공급이 인플레이션 압력과 주요 국가 재정위기 대두로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또 민간부문이 공공부문의 유동성 공급을 대체할 만큼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추가 유동성 공급 제한은 시장에 단기적인 유동성 공백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기동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급격히 하락 중인 가운데 특히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상품가격의 하락이다. 가장 유력한 상품가격 지수인 S&P GSCI 지수를 기준으로 2010년 상품가격은 단기간에 80% 이상 급등했지만 최근 급격한 조정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상품강세의 원인이 대량 유동성 공급과 사상 최악의 기상이변,그리고 주요국 통화약세 때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상품가격의 조정이 일시적인 특이 현상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올해 1분기까지 국내 제조업은 수요회복 · 공급부족 상황에서 재고평가이익까지 겹치면서 마진이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2분기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유동성 공급 제한과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로 수요 증가는 둔화되고 있다. 선진국 기업들의 부활과 전 세계적인 생산능력 증대 등으로 2010년 전후의 수요초과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수요증가 속도 둔화,공급능력 증가,상품가격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현 시점은 중요한 변곡점이다. 향후 주식시장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위기 이후 거시경제의 변동이 시장흐름을 좌우하고 자문형 랩이 득세하면서 주식시장의 대형주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상위 100대 기업과 그 외 기업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시계열로 비교해보면,현재 그 차이는 100% 이상으로 벌어져 있다. 대형주와 중소형주 간 격차가 사상 최고 수준이다.

경기회복 속도가 둔화되고 이익모멘텀이 약화되면 과도한 대형주 쏠림현상 역시 해소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그동안 철저하게 소외된 중소형 개별주에 큰 기회가 있음을 의미한다.

대형주와 중소형주 간 쏠림현상 외에 또 다른 시장 불균형이 있다. 바로 업종 간 쏠림현상이다. 자동차 · 소재를 중심으로 특정 업종 주가만 계속해서 오르는 현상이 1년 가까이 나타났다. 내수 · 소비재 업종의 시장 내 비중은 10년간의 평균 추세 대비 크게 하락해 있는 상태다. 제조업 이익 모멘텀 약화가 현실화되면 이러한 업종 간 불균형 역시 해소될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투자자는 시장 전반에 대한 큰 기대를 버리고,'사막에 핀 꽃'을 찾듯 저평가된 우량기업에 선택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시장 내 불균형의 해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value@truefrie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