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는 '전국의 곳간 열쇠를 다 쥐고 있는 학교'로 불릴 정도로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 재무팀에 폭넓게 포진해 있다. 1926년 최초의 여성경제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서울여상은 올해 개교 85주년으로 금융권에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고교 중 하나다. 서울 무악재에 있던 서울여상은 1991년 관악구 서울대 근처 관악로로 이전했다.

국민 · 신한 · 우리 · 하나 · 기업 · 외환은행 등 국내 6개 시중은행을 비롯해 증권사 보험사 등에 현직으로 근무하는 서울여상 출신은 1000명에 달한다. 시중은행 전체 여성지점장(200여명)의 약 40%인 80여명이 서울여상 출신이다. '여성금융사관학교'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은행권 동문 가운데 현재 최고위직은 윤유숙 우리은행 영업본부장(44회)이다. SC제일은행의 김경애 이사대우(45회)와 권금자 기업은행 지점장(46회 · 인천 계양동),박창화 신한은행 지점장(47회 · 서울 행당동),장명희 산업은행 수석부부장(47회),문명순 금융경제연구소 이사(50회 · 국민은행),이은주 하나은행 지점장(51회 · 서울 성북동),심미란 국민은행 지점장(52회 · 서울 압구정동)도 서울여상 출신이다.

박미경 한화증권 PB본부장(48회 · 상무)은 국내 증권사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덕성여대를 졸업한 뒤 한국투자증권에서 여의도PB센터장 PB본부장 영업부 상무를 거친 뒤 지난달 한화증권 PB본부장으로 영입됐다.

김종민 교보증권 팀장(51회)은 증권업계 최초의 고졸 여성지점장이다. 한국은행 출신의 박노윤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51회)는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박 교수는 2006년 서울여상 출신 석 · 박사 동문 및 현직 교사들과 함께 고등학교 금융교과서인 '금융실무'를 집필, 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기업에도 서울여상 출신들이 회계담당 등으로 많이 진출했다.

서울여상의 인재 배출은 1960~1970년대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당시 남존여비 사상과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가지 못한 여성 수재들이 금융권 취업이 보장되는 이 학교에 많이 들어갔다.

시대적으론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은행들이 급팽창했고 상고 출신 인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문명순 이사는 "당시 가난했지만 공부에 뜻이 있었던 전국의 여학생들 가운데 전교 1~2등을 해야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결혼퇴직각서제가 1976년 폐지되고 여성 행원이 은행의 '책임자고시'에 응시할 수 있게 된 것도 서울여상 출신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당시 은행 지점마다 서울여상 동문이 3~4명씩 근무해 '지점 동문회'를 열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위기를 맞기도 했다. 대학 정원이 크게 늘어 상고 진학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그러나 시중은행 등 금융권이 금융특성화학교로 지정된 서울여상에 눈을 돌리며 각종 협약을 맺고 인재들을 채용하면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서울여상은 지난해 12월엔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가 주최한 고교증권경시대회에서 성적우수학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