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윤증현 "공직 40년 화두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다시 공부할 겁니다"
2년 4개월간의 장관직을 지난 1일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온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65)을 지난 주말 만났다. 퇴임 후 1주일여 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그새 검게 그을려 있었다. "자주 걷고 등산을 좀 했더니 얼굴이 금방 타버렸다"고 했다. 이동할 때는 주로 지하철을 애용하다 보니 퇴임 직후 4만원을 충전한 교통카드 잔액이 7500원으로 줄어 있었다.

자택 근처 대모산에 올라갔을 때 한 노인이 "잠깐만요"하며 앞을 가로막더니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윤 장관 맞으시죠"라고 묻자 "그렇지 않아도 비슷하게 생겼다는 얘기 많이 듣습니다. 정말 닮았습니까"라며 능청을 떨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을 이런 식으로 넘긴다는 것이다.

▼퇴임하면 나그네처럼 살겠다고 했는데,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냅니까.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산에도 가고,그동안 못 본 친구도 만나고,시간이 나면 드라마도 보고, 잡지도 읽습니다. 신문 기사도 부담없이 편하게 보니까 너무 좋데요. 현직 때는 불면증으로 힘들었는데,지금은 햇볕을 자주 쬐고 고민하는 시간도 줄어 많이 좋아졌습니다. 잠도 푹 자고 있습니다. 많이 걸었더니 몸무게도 1주일 만에 2.7㎏이 빠졌어요. "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벌써 지하철 애호가가 된 느낌입니다. 낮에는 붐비지도 않아 편하고 좋습니다. 많이 권장하고 싶어요. 금감위원장 그만두고 2007년엔가 일본에 있을 기회가 있었는데,도쿄대 교수가 그럽디다. 일반적으로 일본 사람이 한국인보다 10년 정도 더 살고 일하는 연령도 10년 정도 많다고요. '소식(小食) 때문 아니냐'고 했더니 '그것도 원인의 하나이겠지만 70%는 걷는 것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길 듣고 난 이후부터 가능하면 많이 걸으려고 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하루 평균 한 시간 정도 더 걷는 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

▼지하철 등 공공요금이 하반기에 줄줄이 오를 것 같습니다.

"서민들 생활이 팍팍하니까 공공요금 올리는 것은 정부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합니다. 특히 서민의 발인 지하철에 대해선 요금인상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

▼매일 언론에 등장하다 갑자기 끊기면 금단현상이 느껴진다고 하던데요.

"아직은 며칠 안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목을 받다가 뒤로 물러나 앉았을 때 정신적인 공황이 나타나기도 한다는데,사람마다 다르겠죠.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지낸 경험이 많아 그런지 사람들과 관계가 줄어도 쉽게 익숙해집니다. "

▼거취는 정했습니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공부입니다. 늘그막에 무슨 공부냐 하겠지만,40년 공직생활 중 계속 의문을 가졌던 것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입니다. 이 한마디에 대한민국의 모든 어려움이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뭡니까. 주인인 국민이 다 할 수 없으니까 대의민주주의를 도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려다 보면 필연적으로 시장경제와 마찰이 빚어집니다. 포퓰리즘이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그리스 같은 나라가 최악의 경우입니다. 민주주의 발상지인 그리스는 오늘날 세계사의 중심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습니다. 얼마 전 그리스에 가본 적이 있는데,우리나라의 1970년대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그런 주제를 다루는 연구소를 만들 생각은 없나요.

"글쎄요,요즘 하도 연구소가 많아서….혼자 공부하기는 어려우니까 전문가들끼리 모여 토론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아이디어도 얻는 모임을 만들까도 생각해 보고 있는데,아직은 여러 가지 구상하는 단계입니다. "

▼김앤장에서 오라고 안합니까. (윤 전 장관은 장관 취임 직전 김앤장 고문으로 일했다)

"저쪽(김앤장)은 저쪽대로,우리는 우리대로 데어서 옷깃도 안 스치려고 합니다. "(웃음)

▼전관예우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가 낳는 부작용은 분명히 막아야 합니다.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유착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자원배분 측면에서 보면,그 사람이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이 사장되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회 전체의 효용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고,법적으로도 직업 선택의 자유와 배치되고,어디서 접점을 찾아야 할지….이런 것이야말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개적으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

▼장관 재임 기간 중 가장 아쉬운 일로 의료산업 등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꼽으셨는데….

"요즘 이공계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리지 않습니까. 그런 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의료 분야가 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합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세상에서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배운 사람일수록 더 하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개방과 경쟁을 통해서였습니다. 만약 개방과 경쟁을 안했다면 어찌 됐겠습니까. 요즘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

▼가정 상비약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것조차 진척이 없습니다.

"감기약이나 박카스를 왜 약국에서만 사먹어야 하느냐,벌써 5~6년째 제가 하고 다니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쪽에서는 '(윤 장관은) 박카스에 카페인 들어가는 것도 모른다'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어요. 카페인 들어가는 음료가 얼마나 많은데….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 번 허리띠 졸라매고 도약하느냐,아니면 주저앉고 마느냐,지금이 바로 그 기로에 서있습니다. "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우리가 고뇌하는 시간이 아직 짧은지도 모르죠.계속 불을 지펴가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했듯이,세월이 가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란 낙관론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국민도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관심이 없었는데,지금은 다르잖습니까. 언론도 시민도 모두 소비자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

▼메가뱅크 논쟁은 어떻게 보십니까.

"노 코멘트입니다. (잠시 생각하더니)누이 좋고,매부 좋고,물 좋고,정자 좋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회비용이란 게 있게 마련입니다. 인간의 행위란 것은 뭐냐,최선의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역사가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경제 행위는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리스크가 있습니다. 메가뱅크도,저축은행 문제도 그런 선상에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

▼후배들한테 어떤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얼마 지나면 다 잊어버리겠죠.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굴러가는 겁니다. 저는 자유인입니다. 인간은 자유 존재로 구속 받기를 싫어합니다. 그것을 경제와 연결시켜 놓은 게 시장경제입니다. 어디 가서 '체통에 맞게 행동하시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제일 싫습니다. 맛있는 것 보면 먹고 싶고,그런 것입니다. "


◆약력=△1946년 마산 생 △서울고,서울대 법학과 △10회 행정고시 합격(1971년) △재무부 금융실명거래실시 준비단장(1989~1990년) △증권국장,금융국장(1991~1995년) △세제실장(1996년) △금융정책실장(1997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1999~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2004~2007년) △기획재정부 장관(2009년 2월~2011년 6월1일)

정종태/주용석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