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 · 차관들의 업무추진비 씀씀이 규정을 바꾸기로 한 가운데 공공기관장들이 지난해 업무추진비의 3분의1가량을 직원 및 유관기관 경조사비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장들이 공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인 업무추진비는 원칙상 경조사비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게 감사원의 입장이다.

◆최소 15억원 경조사비로 지출

한국경제신문이 1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등록된 286개 공공기관의 지난해 업무추진비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 돈의 32.6%가 경조금 및 경조화환 등 경조사비로 지출됐다. 지출 금액은 총 15억여원에 달한다.

알리오에 따르면 전체 공공기관의 업무추진비 중 경조사비 지출 내역 확인이 가능한 기관은 286곳 중 203곳이었다. 나머지 83곳도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 다른 기관과 비슷한 비율로 업무추진비를 경조사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286개 공공기관이 쓴 총 65억원의 업무추진비 중 20억원 이상이 경조사비로 활용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경조사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 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한국인터넷진흥원이었다. 총 2640만원을 직원 및 유관기관의 경조사비로 지출했다. 2위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2426만원)이었다. 3위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로,총 2280만원을 경조사비로 지출했다.

경조사비 지출이 연간 1000만원을 넘는 곳은 조사 대상 203곳 중 3분의 1이 넘는 68곳에 달했다. 2000만원 이상을 쓴 곳도 12곳이었다. 업무추진비의 절반 이상을 경조사비로 활용한 기관도 51곳에 달했다. 특히 KOBACO는 지난해 업무추진비 전액을 경조사비로 사용했다.

◆원칙상 업무추진비로 경조사비 못 써

공공기관들은 경조사비를 업무추진비로 지출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장들이 업무추진비를 경조사비로 써온 건 오랜 관행"이라며 "기관장들이 개인 돈으로 직원들이나 유관기관 경조사비를 전부 내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털어놨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평가분석과 관계자도 "경조사는 기관장들의 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경조사비는)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별로 많지도 않은 금액의 업무추진비까지 정부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칙상으로 공공기관의 업무추진비는 경조사비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게 감사원의 공식 입장이다. 2009년과 지난해 공공기관 평가단장을 맡았던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업무추진비를 기관장들이 직원들 경조사비로 활용하는 건 분명히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경조사비 금액도 문제다. '공무원 행동강령 제17조'에는 공무원은 5만원을 초과한 경조금품을 주고받을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업무추진비로 경조사비를 내는 경우는 예외다. 조사 결과 공공기관들은 대부분 건당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한 건당 30만원 이상 지출한 기관도 상당수였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기관장들의 경우엔 돌,회갑,고희연과 같은 행사 축하에도 업무추진비를 지출해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