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남의 돈 관리하는 '위험물 취급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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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銀의 투자은행 흉내 위험천만…지역밀착형 영업 본분에 충실해야
그러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달랐다. 진로의 경쟁력을 꿰뚫어본 골드만삭스는 부도가 난 진로의 회사채를 액면가 기준 약 1조원 가까이 인수했다. 가격은 대략 액면의 20% 정도였다. 결국 투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진로는 보란 듯이 회생했고 골드만은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소위 투자은행의 영업 범위는 실로 다양하다. 이들은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중개 매매 일임 자문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돈을 번다. 그 중에서 소위 고유계정의 돈을 운용하여 이익을 내는 딜링 내지 자기자금투자(principal investment)는 매우 중요한 수익원이다.
골드만은 바로 이 자기자금투자에 매우 능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글로벌 위기가 닥치기 전에 부동산 관련 채권 포지션을 대거 정리하고 오히려 이 분야에 대해 쇼트 포지션,즉 가격이 떨어지면 이익을 내는 투자를 함으로써 추가적인 이익까지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용파산스와프를 통해 엄청난 이익까지 낼 정도였으니 가히 불가사의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120개의 특수목적자회사를 설립하고 5조원에 가까운 대출을 집행한 후 결국 대부분의 돈을 탕진한 부산저축은행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검찰수사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뇌물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 저축은행이 저지른 행위는 정말 세기적인 스캔들이라 할 만하다. 저축은행은 예금자의 예금을 받아 조성된 자금으로 대출을 집행하고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을 챙기는 상업은행업을 영위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은 주로 지역을 대상으로 대출을 집행함으로써 소위 지역밀착형 영업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거듭되는 규제완화를 통해 규모와 대상이 확장되면서 이 저축은행은 그만 본분을 망각했다. 고양이가 호랑이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골드만삭스나 JP모건 수준의 '국제적 투자은행(IB)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을 추진했다. 수신기능이 있는 상업은행(CB)과 자금운용을 담당하는 투자은행(IB)을 결합한 CIB를 목표로 내세우고 향후 증권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을 신설하거나 인수합병을 시행해 종합금융투자회사가 되겠다는 계획까지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 돈을 모아 적정한 가계나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을 조심스럽게 시행해야 할 이 기관이 자기가 직접 회사를 설립하고 자금을 대출하고 나서는 이 엄청난 자금을 직접 운용했다. 분명히 저축은행인데 투자은행 흉내를 낸 셈이고 고객 돈을 자기 돈처럼 운용하면서 제대로 분산투자도 하지 않고 대부분의 돈을 부동산 분야로 집중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개발 사업에 500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기까지 했다.
꿈만 크다고 현실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실력과 능력,그리고 운까지 갖추어도 될까말까 한 거대한 사업을 무모하게 밀어붙이고 '장렬하게 전사'(?)한 이 은행은 많은 부분에서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업은 '남의 돈'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남의 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로 '위험물'이다. 금융회사는 '위험물취급 인가기관'이고 금융회사 종사자는 '위험물취급 인가요원'이다. 위험물은 정말 세심하고 안전하게 매뉴얼대로 취급해야 한다. 아차 한번 잘못하면 자기도 죽고 남도 죽는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우리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the basics)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무도 아프게 일깨워주고 있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 교수 / (사)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