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기업이 배워야 할 '이건희 경영'
요즘 월가에서는 '중국 리스크(chinese risk)'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주목했던 투자자들이 이제는 고도 성장에 따른 '통증(부작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중국 경제가 물가 상승과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해 조만간 경착륙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글로벌 증시의 '아킬레스 건'이 된 지 오래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 · 개방 선언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에 문을 연 뒤 지속돼온 톱-다운식 경제 정책이 한계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을 신속하게 도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그에 수반하는 기업 문화와 가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특히 이미 증시에 상장된 곳을 인수해 합병하는 우회상장을 통해 기업 공개과정을 건너 뛴 중국 기업들은 자산과 매출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목재 회사인 사이노포리스트의 주가가 단숨에 반토막난 것도 머디워터스라는 리서치 회사가 의혹을 제기한 결과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3월 이후 12개의 중국 상장기업 매매를 정지하거나 상장을 취소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3월 이후 20여개 이상의 회계법인이 중국 기업의 외부감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홍콩 증권선물위원회 의장직에서 최근 물러난 마틴 휘틀리 씨는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퇴임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중국 기업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자칫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때와 같은 또 다른 거품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 리스크가 부각됐다고 해서 중국과의 비즈니스를 피하는 것은 미래 사업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것과 같다.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중국 진출 과정에서 구글이 각종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페이스북이 중국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을 방문해 인터넷 포털인 바이두와 시나닷컴 관계자들을 만난 것도 중 ·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글로벌 경영을 추구하는 중국 기업이라면 내적 변화를 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에 깊숙하게 편입된 중국의 미래는 앞으로 기업 윤리 등 자본주의 가치를 얼마나 신속하게 받아들이고 체화하는지에 달려있다. 기업 윤리의 핵심 가치는 바로 정직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그룹 내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도 정직하고 깨끗한 기업문화가 훼손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따져보겠다는 뜻이다. 이 회장 입장에서 지난 5년 동안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법적 논쟁으로 이를 챙겨볼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삼성테크윈 문제를 방위산업체에 국한된 특수한 문제로 보지 않고 그룹 전체의 윤리성을 체크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나선 것은 어쩌면 오너 경영만이 갖는 강점일 수 있다. 삼성이 제품력과 생산 시스템에서 우위를 차지해 세계 속에서 한국 브랜드 이미지를 전파했듯,소프트파워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이나 사람이나 노력을 통해 정직을 배워가는 게 바람직한 경영이고 삶이다.

뉴욕=이익원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