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홀 최소타 기록인 59타도 쳐봤다. 한 라운드에 이글 3개도 해봤다. 30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에다 버디를 몰아치는 능력까지 갖춰 프로로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잔인하리만치 우승컵과 인연이 없었다.

프로로서는 '루저' 인생을 살았던 해리슨 프레이저(미국 · 사진)가 미국 PGA투어 355개 대회 만에 페덱스 세인트주드클래식(총상금 560만달러)에서 생애 첫승을 따냈다. 1998년 투어에 데뷔했으니 14년 만이다. 그는 다음달 29일 만 40세가 된다. 그의 첫승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 우승이 없었냐'며 놀랐다.

◆그도 기대주였다

미 텍사스대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프레이저는 1996년 졸업 직후 프로가 돼 이듬해 2부투어인 내션와이드투어에서 뛰었다. 데뷔 첫해 우승컵을 안으면서 PGA 직행 티켓도 거머쥐었다. 1998년 루키로 바이런넬슨클래식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는 등 상금랭킹 63위를 했다. 1999년에는 콤팩클래식에서 공동 2위에 올랐고 2000년에는 3위를 두 차례 했다. 2년 연속 상금랭킹 79위로 시드 자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2001년에는 최경주가 상금랭킹 65위를 달릴 때 바로 다음인 66위를 했고 2002년 96위,2003년 83위를 기록했다. 2004년에는 투어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인 상금랭킹 48위에 올랐고 2005년에는 79위,2006년 98위로 꾸준한 성적을 냈다. 우승이 없는 선수로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이었다.

◆불운의 연속

프레이저는 2003년 피닉스오픈에서 사흘 내내 선두를 달렸으나 마지막날 9언더파를 몰아친 비제이 싱에게 밀려 공동 3위에 그쳤다. 2004년에는 미셸 위가 성(性)대결에 나서 1타차로 커트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소니오픈에서 어니 엘스와 연장전을 벌였으나 연장 세 번째 홀에서 패했다. 그해 봅호프크라이슬러클래식에서는 이글 4개를 잡는 진기록을 세웠다. 특히 4라운드에서만 3개의 이글을 잡았으나 공동 9위에 그쳤다.

2005년에는 우승 경쟁을 벌이던 루카스 글로버가 17번홀에서 12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데 이어 18번홀에서 '벙커샷 버디'를 잡아내는 바람에 연장전도 못한 채 1타차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불운은 그를 하향세로 이끌었다. 2007년 상금랭킹 131위로 처지더니 2008년에는 163위로 추락하면서 데뷔 11년 만에 다시 퀄리파잉스쿨로 되돌아가는 수모를 당했다. 그는 당시 4라운드에서 18홀 최소타 기록인 13언더파 59타를 몰아치며 수석으로 통과했다.

2009년 112위로 간신히 시드를 유지했으나 지난해 여름 엉덩이와 어깨 수술을 받아 골프채를 놔야 했다. 올해는 '메디컬 면제' 자격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직전 대회까지 9개 대회에서 6차례 커트 탈락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두 시즌 총상금보다 많은 우승상금

첫날 1오버파 71타를 친 프레이저는 우승이 다가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13일(한국시간) 미 테네시주 멤피스의 TPC사우스윈드C(파70 · 7244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에도 수차례 우승 기회를 놓쳤다. 로베르트 카를손(스웨덴)과 공동선두를 달리던 그는 16번홀에서 1.2m 버디를 실패하며 단독선두로 부상할 기회를 놓쳤고,17번홀에서도 카를손이 보기를 할 때 우승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3m 버디를 실패했다. 연장 세 번째홀인 12번홀(파4)에서 카를손이 2.5m 파 퍼트를 놓치고서야 프레이저는 가까스로 생애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프레이저는 장타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올 시즌 장타 랭킹에서도 297.8야드로 16위다. 퍼팅 난조를 극복하기 위해 최경주처럼 '홍두깨 그립'을 한 퍼터를 사용한 것이 도움을 줬다. 프레이저는 "최근 몇 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받은 우승 상금 100만8000달러는 2009년과 2010년 두 시즌 동안 벌어들인 상금(94만달러)보다 많았다.

지난해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 2위인 리 웨스트우드는 합계 6언더파 274타로 공동 11위에 머물렀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