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용 반도체 기업인 미국 퀄컴의 창업자 어윈 제이콥스(77)는 2005년 회사 경영권을 아들인 폴 제이콥스 회장(48)에게 넘겼다. 미국은 경영권 세습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2세 경영이 성공할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퀄컴은 현재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3일 "제이콥스 회장은 일반 휴대폰용 반도체 생산에 주력하던 아버지의 전략을 바꿔 스마트폰 · 태블릿PC · 의료기기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둠으로써 시장의 우려를 씻어냈다"며 그의 성공스토리를 분석했다.

◆영역 확장으로 아버지와 차별화

제이콥스 회장의 아버지 어윈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는 경영 전략을 폈다. CDMA 기술은 퀄컴이 특허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에 들어갈 CDMA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안정적으로 회사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제이콥스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스마트폰 성장세에서 회사의 미래를 봤다. 스마트폰 기술이 발전하면 TV 식기세척기 혈당체크기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이콥스 회장은 무선통신 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해 무선랜 반도체 개발 전문업체 아테로스커뮤니케이션을 31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1985년 퀄컴 창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수 · 합병(M&A)이었다. 연구 · 개발(R&D) 분야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퀄컴은 지난해 매출의 23%인 25억달러를 R&D에 사용했다. 올 2월에는 1㎞ 반경 내에서도 무선통신이 가능한 '플래시링크'라는 기술을 내놨다. 퀄컴의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41%이며,구글 안드로이드폰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61%다.

◆"창업주 아들 아니라 전문가로 승부"

제이콥스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텔레타이프 단말기로 프로그램 짜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군사용 통신기기 제조사 링커비트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기도 했다. UC버클리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특히 로봇 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제이콥스 회장은 "여름방학 때마다 아버지 회사에 불려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했다"며 "거의 모든 엔지니어링 분야를 경험해 봤다"고 말했다.

제이콥스 회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였지만 '창업주의 아들'이란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제이콥스 회장은 "처음 회장이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실적 향상을 통해 주변의 의혹을 바꿔놨다. 제이콥스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발표되던 날 회사 주가는 36.29달러였지만 현재 주가는 54달러가 넘는다.

코디 에크리 윌리엄스파이낸셜그룹 애널리스트는 "이제 업계에서는 제이콥스 회장이 창업주 아들이라 회장이 됐다고 여기지 않는다"며 "그는 회사에 들어올 때부터 전문가였고 회장이 된 지금은 업계 전체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