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한국발전산업노조(발전산별노조)에 속해 있는 동서발전노조에 정치투쟁 · 이념투쟁을 거부하고 온건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기업별 복수노조가 설립돼 회사 측과 단체협상을 벌이고 있다. 동서발전 기업별노조는 기존 발전산별노조가 지난 3월 회사 측과 체결한 단협과 별개로 새로운 단협을 위해 협상을 갖고 있다.

복수노조 시행(7월1일)이 안 된 상태에서 조직 대상이 중복되는 복수노조가 별도의 단협을 위해 노사협상을 벌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기업 합병을 통한 복수노조나 조직 대상이 겹치지 않는 복수노조만 별도의 단협을 체결해왔다. 현재 발전산별노조에는 동서발전을 비롯해 남부,서부,중부,남동발전 등 5개 한국전력 자회사 노조원들이 가입해 있다.

동서발전 기업별노조와 회사 측 대표는 지난달 30일 상견례를 갖고 본격적인 단체협상에 들어갔다. 김용진 기업별노조위원장은 "기존 발전산별노조와 운동노선에서 차이를 두겠지만 단협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노조의 인사 · 경영권 개입 등 불합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별노조를 설립한 배경에 대해 "기존 노조가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고 상급단체와 연계된 정치투쟁 일변도의 조합활동을 벌이며 조합원들을 많이 괴롭혔다"며 "새로운 노조는 조합원들의 후생복지와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별노조는 강령과 선언에서도 기존의 노조와 차별을 보이고 있다. 발전산별노조 강령에 '선배들의 투쟁정신 계승,신자유주의정책 분쇄,노동자의 정치세력화,자본과 권력탄압 분쇄'와 같은 거친 문구가 많이 들어간 반면,기업별노조 강령에는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국민에게 봉사' 등 온건하고 유연한 표현들이 많다. '자본과 권력 예속에 대한 결사총력 투쟁'이란 문구가 그나마 강한 표현이다.

동서발전 기업별노조는 민주노총의 강경노선에 등을 돌린 조합원이 발전산별노조를 탈퇴해 지난해 12월 만든 조직이다.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으나 복수노조가 허용(7월1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립신고가 반려됐다. 이후 노조는 서울중앙지법에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달 19일 단체교섭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상급단체가 없는 독립노조 형태로 조합 가입 대상 인원 1245명 가운데 75%인 927명이 가입했다. 기존 민주노총 소속 발전산별노조 동서발전지부에는 318명만이 남아있다.

기업별노조는 조합비도 통상 임금의 1%로 기존 발전노조(2%)의 절반만 받고 있다. 1인당 액수는 3분의 1 수준인 평균 8만원에서 2만7000원으로 뚝 떨어졌다.

발전산별노조도 최근 조합원들의 불만을 고려해 조합비를 1.3%(평균 조합비 5만2000원)로 내렸다. 앞으로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선명성 경쟁이 나타날까 우려되지만 조합원들을 위한 서비스 경쟁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남부발전도 민주노총 소속 발전산별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들이 개별노조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발전 기업별노조는 최근 고용부에 기업별노조 설립 신고서를 냈다.

윤기설 노동전문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