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고급) 제품은 말도 꺼내지 마세요. 개발이 마무리됐다 하더라도 당분간 프리미엄급은 출시하지 않을 겁니다. "(제과업체 마케팅담당 임원)

농심 '신라면 블랙'과 롯데제과 '월드콘XQ' 등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가격 적정성 조사결과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품업체들은 가격에 대한 언급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다. '신라면 블랙'에 대해선 사골 육수 성분까지 분석하겠다며 사실상의 '가격 누르기'에 나선 상황에서 고급제품 출시를 통해 가격을 올린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자칫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불안감 탓이다.

해마다 봄과 초여름엔 고급 신제품이 대거 출시되는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포장 디자인을 바꾼 '패키지 리뉴얼'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가격통제 정책이 정책 파트너인 업계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급제품 가격인상 논란의 중심에 선 '신라면 블랙'이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개당 1320원(대형마트 기준)으로 700원대인 일반 신라면보다 비싼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농심은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기존 신라면에 새로운 영양소를 추가한 제품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농심이 지난 4월 이 제품을 내놓으면서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촉각을 곤두세웠던 건 국내 시장에서 고급 라면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어서였다.

정부의 가격 일변도 정책엔 모든 프리미엄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오류가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프리미엄 신제품의 성공 확률은 2~3% 선에 그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한 유업체가 4년 전 내놓은 3000원대 요구르트는 생산이 중단됐으며,모 라면업체의 1000원짜리 J라면은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다. 공정위는 신제품이 시장의 '판결'을 받기도 전에 가격이라는 잣대로 먼저 개입한 결과가 됐다.

기업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소비자와 시장이다. 정부의 섣부른 개입이 정상적인 시장 작동을 어렵게 하면서 기업들의 연구개발 의지만 꺾어놓는 게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김철수 생활경제부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