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하나는 타고났어요. 안경을 쓰지 않아도 복강경 수술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

서울 화곡동 유광사여성병원의 유광사 병원장(69 · 사진)은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루에 평균 7명의 아기를 받고,자궁근종 난소낭종 요실금 등 2~3건의 산부인과 수술을 집도하는 정열적인 의사다.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진료실에 나와 출근하기 전 임신 여부,태아건강을 점검받으려는 30~5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환갑이 넘어 하루에 8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고,한 달에 30건 이상의 수술을 하는 의사는 국내에선 그가 유일하다.

"진료는 나의 의무이자 가장 큰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병원장으로서 임상 일선에서 한발 물러서거나 병원을 비우는 일이 잦으면 환자들의 신뢰가 떨어질까봐 차마 그렇게 못해요. "

그는 장시간 서서 수술하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지금도 매일 1시간씩 근력 및 유산소운동을 하고 20년 이상 소식하는 습관을 지키고 있다. 젊은 산모들이 나이 지긋한 남성 산부인과 전문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유 병원장은 "제 나이를 50대 후반으로 봐 주는 사람도 꽤 있고,나에게 진료받은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를 통해 추천받고 대를 이어 찾아오는 임산부의 비중도 매우 높다"며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1978년 3월 지금의 자리에서 유광사산부인과로 출발한 이 병원은 2001년 1월 새로 지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에 지난 3월 내과를 신설,13명의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다. 본관은 연면적 6700㎡ 규모에 98병상을 갖추고 있으며 신관에 소재한 소아청소년과 불임센터 산후조리원은 본관 3층과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분만과 산부인과 수술은 물론 난임치료,여성종합검진 등 모든 산부인과 진료영역을 커버하고 있다.

유광사여성병원 주위에는 M병원과 W병원 등 유명 산부인과 경쟁병원이 있다. M병원은 불임치료 분만의 비중을 줄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부인과 수술에 집중하는 반면 W병원은 분만 및 여성건강관리 위주로 진료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광사병원은 저렴한데다 모든 여성질환을 해결하고 있어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멀리 고양시 일산과 서울 은평구 등에서도 환자가 찾아온다고.

유 병원장은 "지금도 새벽에 응급 콜을 받으면 병원에 나가본다"며 "임산부는 출혈,자궁외임신,태반조기박리,임신중독증으로 언제든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범국민적인 출산장려운동도 촉구했다. "15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연간 10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우리병원은 강서구청에 한 달 450명의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지금은 신생아가 연 46만명으로 감소해 우리병원도 월 150~200명으로 크게 줄었어요. 돈이 안 된다고 요즘 의대생들이 산부인과 지원을 기피하는데 의료인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유 병원장은 "과거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었던 프랑스는 국가에서 육아부터 교육까지 다 책임지면서 5년 전부터 출산율이 상승해 산모 입원실이 없을 정도"라며 "우리나라도 시험관아기 비용을 나라에서 대주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은 지난해 7월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5년간 연수하고 돌아온 유상욱 전문의가 불임센터 소장을 맡으며 불임치료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유 병원장의 아들인 유 소장은 시험관아기 인공수정 성공률을 과거 30%에서 최근 50% 수준으로 올려놨다. 배란유도제를 병원 편의에 따라 미리 주사하지 않고 배란예정일에 맞춰 놓는데다가 미국에서 배워온 노하우를 살린 덕분이다.

이곳 산후조리원도 인기다. 산모를 위한 체조실,좌욕실,수유실,착유실은 물론이고 원적외선 황토방,샤워실,미용실을 마련했다. 자동으로 머리를 감고 말리는 기계,노화방지 비타샤워기 등도 갖춰놨다. 산모의 태교와 정서안정을 위해 진료대기 공간에서 주 4회 라이브 음악연주회를 개최하고,병원 곳곳에 여러 유명화가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유광사 병원장은 재일교포 출신으로 피혁공장을 운영해 사업적으로 성공한 선친 아래서 유복하게 자랐다. 15대 총선에는 신기남 · 박계동 전 의원 등 쟁쟁한 후보와 맞붙어 고배를 들기도 했다. 유 병원장은 "한 번 낙선 후 정치를 아예 끊고 진료에 전념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주민과 후배들을 위해 더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유 병원장은 2008년 2월 모교인 고려대에 30억원을 기부금으로 내놨으며 지금도 강서구장학회이사장을 맡아 연 1억여원의 장학금을 조성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