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업종 지정 땐 간장사업도 접어야할 판"
"한마디로 '중견기업도 있구나'라는 걸 알아 달라는 겁니다. "

13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이희상 운산그룹 회장(66)이 행사 시작 40분 전부터 긴장한 얼굴로 행사장 입구까지 나와 있었다. "걱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행사가 정부에 이것저것 혜택을 달라고 하는 모임으로 비쳐질까봐서"라고 했다. 그만큼 이날 모임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중소기업 등 외부 시각이 신경 쓰인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지난해 출범한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제분 동아원 등의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오너 경영인이다. 이 회장 외에도 행사장 입구엔 중견기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58),박진선 샘표식품 사장(51),김진형 남영비비안 사장(56),김영진 한독약품 회장(55),이종태 퍼시스 사장(58)이 나와 있었다.

◆'규제에 치인다'… 뿔난 중견기업인들

국내 간장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샘표식품의 박진선 사장은 '서운함'을 토로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정작 중견기업이라는 존재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견기업은 매출이 1조원을 넘는 대기업과 다른데도 법적용은 대기업처럼 하고 있다"며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이야기를 꺼냈다.

해당 업종으로 선정되면 대기업들은 영업활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그는 "진짜 대기업에 관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하고 충분히 동의한다"면서도 "중견기업에도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 우리더러 간장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태 퍼시스 사장은 "중소기업과 상생방법이 많지만 직접 제조하지 않으면 조달을 할 수 없다는 강제 규정이 많아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소기업과 열심히 판로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견-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은 '경제 생태계의 허리'

김진형 남영비비안 사장은 '인력부재'를 호소했다. 좋은 인력이 와줘야 중견기업이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남영비비안은 57년된 국내 최고의 속옷회사.전문경영인으로 10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그는 "대기업 기준으로 연봉을 맞춰주는데도 좋은 인재들이 안 온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허리나 마찬가지인데 국민에게 중견기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자라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에 상륙하는데 우리도 신속하게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올릴 방법을 연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이를 위해선 좋은 사람이 와야 중견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2년에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을 시작해 중간에 시련도 많았지만 중견기업 문턱을 넘었다"며 "중견기업으로 확실히 자리를 굳혀서 동대문에서 꿈을 키우는 중소기업인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은 "중견기업이 가업상속지원을 받기 위해선 매출규모 1500억원 이하에 10년간 연평균 20% 이상 고용을 늘려야 하는데, 더 크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를 완화해 일본과 같이 장수기업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