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Short, Surprise, Shocking…이건희 회장 '3S' 통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테크윈 경영진단(감사)에서 소소한 부정과 비리가 다수 적발됐다는 보고를 받고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전 그룹 구성원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는 서릿발 같은 질책을 내놓자 국내외 28만여 삼성 임직원들은 초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임직원들은 거래처 및 외부 인사와의 불요불급한 식사 · 골프 약속을 취소하고 서랍 속 업무 매뉴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업무 관행들에 잘못이 없는지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도덕적 재무장뿐 아니라 업무 자세가 타성에 젖지 않았는지도 점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존재 자체로 삼성 임직원들에게 외경심과 긴장을 주는 리더십을 갖고 있다.

◆의도가 담겨 있는 '3S' 리더십

수없이 많은 리더십 연구의 바탕에는 '성공한 리더에게 요행이나 우연은 없다'는 명제가 깔려 있다. 그들의 모든 행동과 말의 이면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 어떤 성공한 리더도 요행을 기대하며 업무 계획이나 프로젝트를 짜지는 않는다는 것도 정설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왜 삼성 조직에 충격파를 던졌을까. 재계에선 갖은 관측들이 떠돌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위기 의식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으로선 조직 내부의 위기가 오히려 더 큰 문제라는 인식 아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수준의 충격파를 던졌다는 해석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경영에 복귀한 뒤 줄곧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위기의식을 표출해왔다. 그런데 신경영 선언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크고 작은 성취를 맛본 지금의 삼성 조직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이 회장의 '격노'를 불러왔다는 시각이다. 이 회장이 지난 4월 말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서울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많다.

허철부 명지대 명예교수는 앞서 충격 요법을 이 회장 리더십의 3대 핵심 요소로 꼽았다. 허 명예교수는 '삼성의 곤경과 이건희 리더십의 재음미'라는 논문에서 "이 회장은 '짧게(short),의표를 찌르고(surprise),충격(shocking)'을 가하는 방식으로 삼성의 혁신을 이끌며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고 분석했다. 논문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과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경영을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앞으로! 온워드(onward) 리더십

성공한 경영자들의 공통점은 시야가 언제나 미래에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 회사 조직과 구성원들이 과거 성취에 도취하고 안주하면 곧바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때문에 조직에 상시적으로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경영전략을 구사한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도 충격 요법을 통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경영자로 꼽힌다. 퇴임 8년 만인 2008년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그는 모든 매장의 문을 닫고 서비스 교육을 하는 혁신 플랜을 실천하며 스타벅스에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슐츠 회장은 끊임없는 전진을 외치는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메일을 보낼 때 끝머리에 '감사합니다(thank you)'나 '진심을 담아(sincerely)'라고 적는 대신 '전진 앞으로!'라는 뜻의 '온워드(onward)'를 사용한다.

이 회장 역시 신경영 선언 이후 "생산라인을 세우더라도 품질을 개선하라"고 지시했고 1995년 3월 삼성전자는 통화품질이 불량한 휴대폰 15만대를 불태우는 화형식까지 했다. 삼성 내부는 물론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삼성의 변신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카리스마 리더십 vs 서번트 리더십

리더십의 스타일은 다양하다. 연구자들은 대체로 권위적(authoritative) 리더십,민주적(democrative) 리더십,카리스마(charismatic) 리더십,서번트(servant) 리더십,조용한(quiet) 리더십 5가지로 나눈다. 물론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좋다라는 정답은 없다.

정치 지도자와 달리,성공한 CEO들은 카리스마 또는 권위적 리더십을 가진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게 정설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잭 웰치 GE 전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구성원들을 갈등 없이 이끄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민주적 리더십이나 서번트 리더십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와 달리 기업 경영자는 조직의 반발이 있더라도 자신의 분명한 비전을 실현해가는 추진력이 더 중요하다.

독일 컨설팅 회사인 롤랜드버거에 따르면 어떤 리더십 스타일을 택하더라도 성공하는 리더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 요소가 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분명한 비전 △조직원들을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열정과 자기희생 △위기 때 흔들리지 않으며 언제나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자기확신 △기존 판도를 뒤바꾸기 위해 시장 프레임을 새로 짤 수 있는 혜안 △구성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