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덩달아 호황을 누리는 곳이 택배회사다. 하지만 낙후된 시스템이 늘 문제였다. "이번에도 허탕이야?"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수십번 현관문을 두드리다 지친 택배기사와 물건을 기다리다 짜증난 고객….이런 엇갈림을 해결한 기업이 있다. 영국 비박스다. 무인 택배시스템을 도입해 배달혁명을 일으킨 물류회사로 창립 10년 만에 영국 무인택배 시장의 70%를 장악했다.

이 회사는 1350개 구역에 1만8000개의 물품보관소를 운영하고 있다. 평균 4㎞마다 한 개꼴이다. 2007년엔 컨설팅회사 딜로이트가 선정한 50개사 가운데 '가장 급성장한 테크놀로지 기업' 1위를 차지했다. 비박스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박스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어딜까' 고민했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답을 찾았다. 이용자가 줄어 고민하던 영국 통신사업자 BT가 두손을 들고 환영한 건 당연지사.

먼저 런던 시내 1000여개 공중전화 옆에 금고처럼 생긴 박스들로 이뤄진 물품보관소를 만들었다. 이용 방식 또한 간단하다. 인터넷 쇼핑 때 집 주소 대신 지정한 물품보관소 주소를 알려준다. 물품이 배송되면 로커 문을 열 수 있는 인증번호를 문자와 메일로 받는다. 다음날 아침 8시 이후 공중전화 부스에서 물건을 찾으면 그걸로 끝이다.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30대 청년 스튜어트 밀러가 2000년 비박스를 처음 세웠을 때 주 타깃은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이었다. 배송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틴벤토리(Thinventory)'라는 물류추적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면서 낭비 없는 배송이 가능하게 됐다. B2B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IT기술은 2009년부터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비박스가 고객으로부터 무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고객의 목소리를 곧바로 혁신으로 연결하는 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여명의 전문분야 인력으로 구성한 내부 연구 · 개발(R&D)팀을 두고 서비스를 개발한다.

필요하면 외부 업체와의 협력도 주저하지 않는다. '주소를 모르는 친구에게 소포를 보내고 싶어요'라는 고객 의견이 나오자 SNS를 통해 택배사업을 하는 '센드소셜(Sendsocial)'과 계약,해당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좋은 예다. '일요일에도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요'라는 고객 목소리는 올해 초 업계 첫 365일 배송으로 해결했다. '껍데기만 바꿀 것인가,뼛속까지 바꿀 것인가. ' 이것이 성패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