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자살 신호
자살하려는 사람의 80%는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낸다. 그 중 50%는 주변에 "죽고 싶다"고 분명하게 밝힌다고 한다. 세상에 마지막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도 "자살은 시야가 아주 좁아진 상태에서 공격적 방식으로 도피하는 행위"라며 "자살의 목적은 뭔가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것이어서 대개 시그널을 보낸다"고 했다.

겉으론 죽음 충동으로 가득차 있는 듯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엔 '죽기 싫은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수에 그치는 경우 14%만 다시 자살을 결행하고,세 번까지 시도하는 사람은 미수자의 약 5%라는 조사도 있다. 신호는 여러가지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자살경고 표시'는 이렇다. 자살에 대해 얘기한다,주변을 정리하는 행동을 한다,몸을 돌보지 않거나 자해행동을 한다,행동이 변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만성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국내 자살자 수는 1만5413명에 달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5838명의 세 배에 가깝다. 산술적으로 10만명당 31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환산해도 28.4명으로 단연 1위다. OECD 회원국 평균(11.2명)의 2.5배이고 2위인 헝가리(19.6명) 보다 훨씬 높다. 전직 대통령,회사 대표,고위 공직자,연예인 등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올 들어서도 KAIST 학생들과 교수,아나운서,축구선수에 이어 장관 출신 대학 총장이 그제 목숨을 끊었다.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한 가치관 혼란,강한 성공지향적 경향,경쟁 심화에 따른 스트레스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가속화된 가족구조 변화와 가족의 상담 기능 후퇴를 원인으로 본다. 출세와 성공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가족의 상담기능이 미약해짐에 따라 개개인에게 홀로 판단과 선택을 강요하는 현실이 자살을 불러온다는 설명이다.

상승 곡선을 그리던 유럽 자살률은 1980~1990년대에 30% 안팎 줄었다. 전문 상담센터를 늘리고 우울증에 대비하는 등 예방에 나선 결과다. 핀란드는 1986년 국가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가동해 한때 10만명당 30명이었던 자살률을 16.7명까지 끌어내렸다. 우리는 걱정만 많을 뿐 대책은 겉돈다. 자살은 사회와 나라가 방관하는 일종의 살인이란 말을 되새길 때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