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모범시민이 되자'
아파트살이는 괴롭고 조심스럽다. 위층에선 청소기 소리는 물론 발자국 소리까지 들리고,아래층에선 화장실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와 부엌에서 굽는 생선 냄새가 올라온다. 아이들이 뛰거나 때 없이 피아노라도 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소음에 예민하면 더 그렇다.

이러니 관리사무실마다 틈틈이 방송한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니 다들 주의하자.아이들이 쿵쾅거리지 않도록 타이르자,밤 9시 이후엔 악기 연주를 삼가자,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다 창밖으로 재를 털거나 꽁초를 던지지 말자,복도에 짐을 내놓지 말자,방화문을 닫자 등.'

보통은 알아서 신경 쓴다. 특별히 가깝게 지내진 않아도 걸핏하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마당에 서로 얼굴 붉혀봤자 좋을 것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항의했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내려가 협박했다는 재벌가 사람은 몰상식하고 이상한 경우다.

경기도 동두천시가 지역 내 아파트 단지에 '모범 시민이 되자'는 제목의 홍보 팸플릿 4000부를 배포했다는 소식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병기한 만화 형식 책자엔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니지 말자' '아파트에서 파티를 자제하자''개를 풀어 놓지 말자'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황당하다 싶은 일이 벌어진 이유인즉 지역에 거주하는 미군 가족 일부가 국내의 공중도덕 및 생활규범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란 보도다. 아파트에서 창문을 연 채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가 하면 파티를 한답시고 밤 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공원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바비큐 파티를 하며 폭죽도 터뜨린다는 것이다.

시(市)에서 그런 홍보 책자를 만들기까지 한국 주민들의 고충과 그로 인한 양쪽의 갈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파트에서 밤낮없이 쿵쾅거리면 생지옥이 따로 없다. 동네라도 속옷 같은 차림으로 다니는 건 보기 민망하고 대형 견을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게 하면 밖에 나가기 무섭고 떨린다.

불안감 조성과 음주 소란,인근 소란(라디오 · TV · 전축 등을 크게 틀거나 고성방가 등으로 주위를 괴롭히는 행위),위해동물 관리 소홀,과다 노출은 '경범죄 처벌법'상 범죄 행위다.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공동체 일원으로 살자면 그 사회의 제도와 질서 · 규범을 지켜야 마땅하다. 동두천시 미군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