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운영하는 한국 교포기업이 미국 가발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1960~1970년대 수출 주력 상품으로 꼽혔던 한국의 가발 비즈니스가 국내에서는 퇴조했지만 미국에서는 시장공략에 성공해 갈수록 번창하는 추세다. 미국 최대 가발유통업체 셰이크앤고(SNG · Shake-N-Go)를 이끄는 김광석 사장(56)과 김희석 부사장(51) 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SNG는 지난해 가발 · 반가발 · 익스텐션(머리카락을 연장해 꾸미는 제품) 등 헤어제품으로 2억6000만달러(3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전체 시장의 25%를 차지한다. 주 고객인 흑인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독자적으로 디자인해 공략한 덕분이다. 이 회사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있는 30여개 하청업체에서 가발을 제조해 들여와 미국 내 소매업체인 3000여개 뷰티숍에 제품을 공급한다.

김씨 형제는 1970년대 후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왔다. 가발가게를 운영하는 친척의 권유로 1986년 뉴욕시 자메이카에 있는 벼룩시장에 5000달러(당시 환율 기준 450만원)로 '김스 휴먼헤어'라는 가게를 냈다. 이어 1991년 SNG를 공동 창업했다. 오는 8월1일이면 창업한 지 만 20년이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한 형과 미국 워싱턴대 철학과를 나온 동생은 소매업에서 쌓은 사업 감각을 활용해 회사를 키워냈다.

이 회사를 비롯한 한인기업은 미국 가발 유통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규모가 큰 소매업체들은 한 달에 3만개의 제품을 판매한다고 한다. 네일숍과 세탁소보다 시장 점유율이 훨씬 높다. 상술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유대인들도 한국기업이 쌓은 철옹성 같은 상권을 파고들지 못할 정도다.

김 사장은 "도소매업체 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고객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먼저 선보인 덕분에 한인들이 미국 헤어업계를 주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이 뉴욕주 포트워싱턴시 본사 2층에 있는 제품개발실을 찾아 신제품 개발 동향을 꼼꼼히 챙기는 이유도 디자인이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해서다.

개발실 디자이너들은 수시로 김 사장에게 신제품 개발 현황을 보고한다. 매년 수천 건이 개발되지만 모두 양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280여종의 가발과 30종 반가발 및 20종의 익스텐션을 시판 중이다.

시장성을 갖춘 제품을 고객들에게 팔려면 소매업체인 뷰티숍들의 마케팅을 측면 지원해야 한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흑인들을 상대로 '헤어스타일 쇼' 등을 개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NG는 매년 5~6회 뉴욕,애틀랜타,시카고,디트로이트,필라델피아 등 대도시를 돌며 쇼를 개최해왔다. 김 부사장은 "대도시 순회 쇼는 주요 고객인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이익환원 차원에서 시작했다"며 "한인들의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SNG는 각주에 퍼져 있는 뷰티숍에 전문인력을 파견해 제품 진열 등을 돕는다.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진열대 등을 제작해 공급하기도 한다. 원가를 절감해 낮은 가격으로 고품격의 제품을 공급한다. 그러다 보니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김 부사장은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고급 인력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며 "경영효율을 높이고 신사업을 찾기 위해 우수한 인재를 계속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