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왕' 잡아라…제일모직-SI '명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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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각광 받는 디자이너…독점 판매권 따내자"
SI, 신세계 본점에 매장 열고 "계약하자" 총력전
SI, 신세계 본점에 매장 열고 "계약하자" 총력전
제일모직 해외상품사업부 직원이 갤러리아백화점 여성의류 바이어를 찾은 건 지난 4월이었다. "요즘 미국에서 가장 뜨는 브랜드인 '알렉산더 왕'을 제일모직이 수입 · 판매할 계획이니 내년 봄 매장 개편에 맞춰 서울 압구정동 명품관에 좋은 자리를 내달라"는 얘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뒤 이번엔 신세계인터내셔널(SI) 담당자가 찾아왔다. 용건은 똑같았다. "SI가 알렉산더 왕을 잡았으니 내년 봄시즌에 명품관에 입점시켜달라"는 것이었다.
한 브랜드를 놓고 국내 굴지의 패션업체인 제일모직과 SI가 서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갤러리아 관계자는 "같은 브랜드를 놓고 서로 다른 업체들이 각자 매장을 내겠다는 건 처음 본다"며 "내년 봄 시즌에 알렉산더 왕을 입점시킬 계획이지만,제일모직과 SI 중 어디에 매장을 줄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들 기업이 한치의 양보없는 경쟁을 벌이게 됐을까. 발단은 알렉산더 왕이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 데 있다. 올해 27세의 대만계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이끄는 이 브랜드는 '관습을 깨는 실험정신과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절제미'를 앞세워 2007년 등장하자마자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숙녀정장 한 벌에 100만~300만원대로,'릭오웬스' '닐바렛' 등과 함께 준명품급 브랜드로 분류된다.
남다른 패션 안목을 지닌 제일모직과 신세계인터내셔널에 알렉산더 왕은 '놓칠 수 없는' 브랜드였던 것이다. 더구나 거의 모든 명품이 국내에 들어온 탓에 새로 들여올 만한 브랜드가 마땅치 않던 터였다. 산하 편집숍인 '10꼬르소꼬모'(제일모직)와 '분더숍'(SI)을 통해 알렉산더 왕 제품을 소량 들여놓고 소비자 반응을 살펴본 두 업체는 '한국에서도 통하겠다'는 결론이 나오자,독점 판매권을 따내기 위해 알렉산더 왕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통상 해외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1개 업체와 독점 딜러계약을 맺은 뒤 매장을 내는 수순을 밟지만,알렉산더 왕은 달랐다. 패션 대기업들이 "한국시장을 뚫어줄테니 독점 판매권을 달라"며 알렉산더 왕에 부탁하는 형국이 된 것.'밀고 당겨야 할' 협상도 알렉산더 왕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업계 관계자는 "알렉산더 왕은 제일모직과 SI에 경쟁을 붙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알렉산더 왕은 제일모직과 SI 측에 '독점계약은 나중에 맺겠다. 그보다 먼저 누가 더 장사를 잘 하는지,누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지 살펴보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업체끼리 경쟁이 붙은 탓에 알렉산더 왕의 '몸값'만 올랐다"며 "한국의 대표 패션업체들이 신생 브랜드에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SI는 독점계약도 안 맺은 상태에서 지난 3월 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 서울 충무로 본점 명품관에 알렉산더 왕 매장을 열었다. 계열 백화점이 없는 제일모직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 무역센터점,갤러리아 명품관 등 서울 강남권 백화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만약 제일모직이 독점 딜러로 선택되면 SI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알렉산더 왕 매장을 접거나 제일모직에 넘겨야 한다. 반대로 SI가 승리하면 제일모직은 매장 개설작업을 중단해야 된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한 달 뒤 이번엔 신세계인터내셔널(SI) 담당자가 찾아왔다. 용건은 똑같았다. "SI가 알렉산더 왕을 잡았으니 내년 봄시즌에 명품관에 입점시켜달라"는 것이었다.
한 브랜드를 놓고 국내 굴지의 패션업체인 제일모직과 SI가 서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갤러리아 관계자는 "같은 브랜드를 놓고 서로 다른 업체들이 각자 매장을 내겠다는 건 처음 본다"며 "내년 봄 시즌에 알렉산더 왕을 입점시킬 계획이지만,제일모직과 SI 중 어디에 매장을 줄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들 기업이 한치의 양보없는 경쟁을 벌이게 됐을까. 발단은 알렉산더 왕이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 데 있다. 올해 27세의 대만계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이끄는 이 브랜드는 '관습을 깨는 실험정신과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절제미'를 앞세워 2007년 등장하자마자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숙녀정장 한 벌에 100만~300만원대로,'릭오웬스' '닐바렛' 등과 함께 준명품급 브랜드로 분류된다.
남다른 패션 안목을 지닌 제일모직과 신세계인터내셔널에 알렉산더 왕은 '놓칠 수 없는' 브랜드였던 것이다. 더구나 거의 모든 명품이 국내에 들어온 탓에 새로 들여올 만한 브랜드가 마땅치 않던 터였다. 산하 편집숍인 '10꼬르소꼬모'(제일모직)와 '분더숍'(SI)을 통해 알렉산더 왕 제품을 소량 들여놓고 소비자 반응을 살펴본 두 업체는 '한국에서도 통하겠다'는 결론이 나오자,독점 판매권을 따내기 위해 알렉산더 왕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통상 해외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1개 업체와 독점 딜러계약을 맺은 뒤 매장을 내는 수순을 밟지만,알렉산더 왕은 달랐다. 패션 대기업들이 "한국시장을 뚫어줄테니 독점 판매권을 달라"며 알렉산더 왕에 부탁하는 형국이 된 것.'밀고 당겨야 할' 협상도 알렉산더 왕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업계 관계자는 "알렉산더 왕은 제일모직과 SI에 경쟁을 붙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알렉산더 왕은 제일모직과 SI 측에 '독점계약은 나중에 맺겠다. 그보다 먼저 누가 더 장사를 잘 하는지,누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지 살펴보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업체끼리 경쟁이 붙은 탓에 알렉산더 왕의 '몸값'만 올랐다"며 "한국의 대표 패션업체들이 신생 브랜드에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SI는 독점계약도 안 맺은 상태에서 지난 3월 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 서울 충무로 본점 명품관에 알렉산더 왕 매장을 열었다. 계열 백화점이 없는 제일모직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 무역센터점,갤러리아 명품관 등 서울 강남권 백화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만약 제일모직이 독점 딜러로 선택되면 SI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알렉산더 왕 매장을 접거나 제일모직에 넘겨야 한다. 반대로 SI가 승리하면 제일모직은 매장 개설작업을 중단해야 된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