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획재정부와 월례 거시정책실무협의회를 갖기로 합의한 데 대해 일각에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는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는 모양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MB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은이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것을 무조건 독립성 훼손으로 몰고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자 공허한 비난이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고정관념이야말로 구시대적이다. 과거 한은법 파동 때의 '독립 대 종속'이란 프레임에 갖힌 채,한은과 정부를 단선적 대립관계로만 보는 오류다.

금통위원들이 고시생처럼 두문불출한 채 자신만의 제한된 논리로 독단적인 금리정책을 펴거나 산정의 신선들처럼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금리정책은 실물과 동떨어진 공허한 계산 절차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한은의 금리결정 과정은 답이 하나인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온갖 대내외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풀 수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중앙은행은 행정부처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세계경제 더블딥 우려,가계빚 800조원,물가와 고용 불안,저축은행 사태 등 거시 미시 정책 간의 적절한 조화가 금리 결정 속에 녹아들어야 하는 그런 복잡계적 상황이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 공조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FRB의 벤 버냉키 의장은 매주 백악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은 독립은 행정부가 아닌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점을 소위 한은 독립론자들은 고의적으로 무시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중앙은행은 '고도의 중립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데 한 치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중립성은 중앙은행 자신으로부터의 자유까지도 포괄하는 단어라는 점을 잊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