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워치] '톨레랑스'가 봉합 단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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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분열의 시대'로 회귀하나…사회 갈등ㆍ빈부격차로
유럽 사회에서 관용(톨레랑스 · tolerance)이란 개념과 문화는 오랜 역사적 경험과 반성을 통해 태어났다. 관용은 종교적 억압과 박해,폭력을 자양분 삼아 타인을 인정하고,자유를 허용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볼테르 같은 사상가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학설과 사상이 수용되고 논쟁이 벌어졌던 고대 아테네를 톨레랑스 개념의 탄생지로 꼽았다. 로마는 "신들을 향한 모욕에 분개하는 것은 오직 신의 몫"이란 경구가 회자될 정도로 다른 사상에 관대했다.
그러나 중세시대 교회 권력의 힘이 강해졌고 관용의 문화는 퇴색했다. 역사학자들은 1572년 프랑스에서 구교도가 신교도 2만명을 학살한 성바르톨로뮤 대학살을 근대 톨레랑스 문화가 탄생한 계기로 본다. 이후 유럽에서 신교와 구교 사이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태도를 가리켜 '참다 · 견디다'란 뜻을 지닌 '톨레라레(tolerare)'라고 표현했다.
근대 이후 존 로크,존 스튜어트 밀 등의 사상가들이 '관용'의 개념을 강조했다.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1649년 메릴랜드주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톨러런스 조례'를 만들었다.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후 잇따른 국내 정정 불안으로 톨레랑스는 지지세를 넓혀갔다. 특히 산업혁명기에 사회적 갈등이 늘고,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각종 사회대립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톨레랑스'가 퍼져나갔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볼테르 같은 사상가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학설과 사상이 수용되고 논쟁이 벌어졌던 고대 아테네를 톨레랑스 개념의 탄생지로 꼽았다. 로마는 "신들을 향한 모욕에 분개하는 것은 오직 신의 몫"이란 경구가 회자될 정도로 다른 사상에 관대했다.
그러나 중세시대 교회 권력의 힘이 강해졌고 관용의 문화는 퇴색했다. 역사학자들은 1572년 프랑스에서 구교도가 신교도 2만명을 학살한 성바르톨로뮤 대학살을 근대 톨레랑스 문화가 탄생한 계기로 본다. 이후 유럽에서 신교와 구교 사이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태도를 가리켜 '참다 · 견디다'란 뜻을 지닌 '톨레라레(tolerare)'라고 표현했다.
근대 이후 존 로크,존 스튜어트 밀 등의 사상가들이 '관용'의 개념을 강조했다.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1649년 메릴랜드주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톨러런스 조례'를 만들었다.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후 잇따른 국내 정정 불안으로 톨레랑스는 지지세를 넓혀갔다. 특히 산업혁명기에 사회적 갈등이 늘고,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각종 사회대립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톨레랑스'가 퍼져나갔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