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영학은 몰라도 '경영의 위기'는 알겠더군요. 경영은 더 이상 회사를 잘 꾸려가는 '기술'이 아니라 기업이 윤리성과 사회변화,인문학 등과 만나고 이어지는 '접점'입니다. "

문학평론가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초대 문화부 장관 · 74 · 사진)가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한경영학회가 주최한 '2011 국제학술대회'의 기조발표자로 나섰다. 그가 이날 경영학과 교수들 앞에서 한 강연의 주제는 '시대의 변화와 창조경영:창조를 위한 이종격투기'이며 부제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법'이다.

그는 "'디지로그'라는 용어는 6년 전 책을 쓰면서 언급했는데 당시에는 관심이 없다가 지난해부터 아이폰과 트위터,페이스북 등 스마트 혁명이 불어닥치자 다들 물어보느라 난리"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단순히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정보기술(IT) 트렌드 얘기가 아니라 기업 환경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이 스마트 기기 시리즈부터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섭렵하면서 노키아 같은 회사가 무너지는 것 보세요. 우리 기업들은 아직 첨단을 걷고 있는 게 아니라서 피부로 못 느끼겠지만 2~3년만 지나면 냉혹한 현실이 될 겁니다. 경영을 아무리 잘해도 큰 틀이 바뀌면 소용없죠.경영자가 배우나 연출가이고 그동안 좋은 연기로 명작을 무대에 올리는 데 치중했다고 치죠.그런데 이젠 무대가 아니라 극장 자체가 망가지거나 비상구에서 불이 나는 셈이에요. 우리 회사만 열심히 운영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

이 교수는 현재의 기업 환경을 '창조의 이종격투기 시대'라고 정의했다. 급소만 때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복서와 레슬러가 싸우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땀과 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초고속 시대를 지나 이제는 공감하고 위로하고 감동하는 문화적 힘,창조적인 제3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뗏목 타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동력으로 삼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나 옛 남미처럼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물고기를 한번 그려 보세요. 이상하게 우리는 대부분의 성인들이 물고기가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옆면을 그리죠.이때 정면을 보고 있는 물고기를 그리는 특이함,이런 소수의 '장애인'들이 바로 창조적인 사람들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독선적이고 고집이 세고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만 미국은 우리보다 이런 사람들을 더 포용한다는 것이죠.창조는 그동안 경영학이 안 가르치던 요소들을 바라보는 것,모순과 인터페이스에 대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창조경영과 기업경쟁력'이라는 주제로 한 · 중 · 일 3개국 대학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한 후 참석자들과 종합토론을 벌였으며 노희웅 행남자기 사장은 학회가 주관하는 '전문경영인대상'을 수상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