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의 수장들이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집무실에 가계부채 증가 상황 그래프를 붙여놓고 "그것 때문에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심각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반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계부채 증가는 사실이지만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기본적으로 정부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김석동 "가계부채 때문에 잠 못자"

김 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시장이 너무하다고 느낄 정도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가계부채 대책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실무진에 주문했다. 현재 가계부채 대책에는 제2금융권 대출 총량제와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 제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가계부채가 잠재 불안요인이고 시한폭탄으로까지 불리는 상황인 만큼 미시적 대책과 함께 정부와 통화당국의 거시적 접근도 필요하다"며 "가계부채에 대해 (다른 부처에서는) 크게 신경쓰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우리라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재완 "통계 착시일 수도"

박 장관은 지난 16일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나 위기라고 볼 만한 정도는 아니다"며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높은 것은 가처분 소득 대비 보유자산 비중이 너무 큰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며 "소득과 자산보유의 괴리에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와 동등한 잣대로 비교하기 어려우며 문제가 너무 과장됐다는 시각이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해 "가계 가처분 소득이나 저축률을 산정할 때 (저축 성격인데 소비로 분류되는) 연금 등 몇몇 변수가 빠진 데 따른 통계적 착시 현상이 없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중수 "위기 아니다"

김 총재의 시각도 박 장관 쪽에 기울어 있다. 그는 17일 오전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최근 언론이나 정부에서 가계부채를 많이 이야기한다"며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어디까지가 소위 위험 수준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경험적으로 보면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걸 막지 못하진 않았고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위기가 됐다"고 했다. 가계부채가 심각하지만'진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관계기관 간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일의 우선순위에 대해 각 기관이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금리와 같은 거시 차원의 접근보다는 미시적으로 은행 창구지도 등의 방식을 먼저 써야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책발표를 앞두고 관련 부처와 기관 간 혼선이 빚어짐에 따라 제대로 된 가계부채 대책이 나올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는 받았지만 너무 센 대책들은 오히려 서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타 부처 협조를 받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상은/유승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