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의 엔진 실린더 숫자를 놓고 자존심 경쟁이 뜨겁다. 한국GM 쉐보레 스파크는 엔진 내에 피스톤이 4개인 4기통인 반면 기아차 모닝은 3개만 있는 3기통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쉐보레가 4기통 스파크를 내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경차에 3기통 엔진을 가장 처음 사용한 곳은 아이러니하게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였고,첫 차는 바로 스즈키 알토를 들여와 만든 티코(Tico)였다. 3기통 티코가 훗날 3기통 마티즈로 이어지며 인기를 얻자 1996년 현대차는 4기통 아토스를 내세워 경차 기통 수 경쟁에 불을 붙였다. 4기통의 힘으로 3기통의 인기를 누르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과는 아토스의 참패로 끝났고,기통 논란은 기아차가 1999년 모닝의 전 세대인 비스토를 내놓으며 다시 시작됐다.

당시 대우차는 경차 배기량이 800㏄ 미만이어서 실린더의 직경을 나타내는 보어(bore)와 실린더 내 최대 압축 길이를 나타내는 스트로크(stroke)를 비교할 때 '롱 스트로크' 방식이 낫다고 강조했다. 롱 스트로크의 경우 중저속에서 높은 힘을 내는 만큼 경차에는 제격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면 현대차는 고회전에 유리한 쇼트 스트로크 방식이야말로 경차의 성능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이라고 맞받았다. 하지만 이런 논리 뒤에는 현실적 배경이 하나 있었다. 대우차는 4기통 800㏄ 엔진이 없었고,현대차는 3기통 엔진이 없었다.

이후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배기량이 1.0ℓ로 커진 지금 경차는 다시 기통 수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장이 역전됐다. 스파크가 4기통이고,모닝이 3기통이다. 모닝 엔진 내 실린더의 보어와 스트로크는 71㎜와 78.8㎜다. 보어보다 스트로크가 긴 롱 스트로크 엔진이다. 반면 스파크는 보어와 스트로크가 각각 68.5㎜와 67.5㎜로 거의 같은 스퀘어 타입이다.

3기통과 4기통은 이론적 차이가 존재한다. 같은 10마력을 발휘할 때 3기통은 실린더 한 개가 3.3마력을 내야 하는 반면 4기통은 2.5마력을 내면 된다. 따라서 3기통의 폭발력이 더 높되 그만큼 폭발 진동이 많이 발생한다. 같은 2000㏄라도 4기통보다 6기통의 진동 소음이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자동차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배기량 1.0ℓ의 3기통과 4기통 차이는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3기통의 진동과 소음은 충분히 억제할 수 있고 4기통이라고 성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즉 엔진 선택은 제조사의 비용과 여러 전략에 따라 나눠지는 것일 뿐 3기통과 4기통의 차이로 제품의 우열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14년 전 마티즈가 나왔을 때 현대차는 마티즈가 대관령을 오를 수 없다고 비방했다. 그러자 이에 발끈한 대우차는 마티즈로 대관령을 오르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었고 가뿐히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대우차는 아토스가 대관령을 오르지 못한다고 반격했다. 현대차는 아토스 동호회를 동원해 대관령을 넘으며 대우차의 공격을 방어했다. 두 차종 모두 대관령을 어렵지 않게 올랐다는 점에서 3기통과 4기통의 논란은 점차 줄어들었다.

흔히 "내가 하면 사랑이요,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벌어지는 경차 기통 수 논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말이다. 각자 입장에 따라 3기통이 나을 수도,4기통이 좋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란 말이 떠오른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