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거르고 취업 못해…시민단체ㆍ전문가 난민법 통과 촉구

난민 지위를 얻으려고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들이 적절한 생계 수단을 보장받지 못하고 사실상 사회ㆍ경제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난민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턱없이 허술하다며 국회 계류 중인 난민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난민신청자ㆍ소송자 생계 '사각지대' 방치 =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달 14일 기준으로 3천260명이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해 584명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697명이 심사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 중 222건이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들 중 난민 지위를 신청한 지 1년이 안 된 사람들은 생계 수단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법무부가 지난 2008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난민 신청자에게도 취업 허가를 내주도록 했지만, 신청 후 1년이 지나야 한다고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의신청 심사까지 거쳤지만 불허 결정을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체류가 유예된 사람들도 현행 법 규정상 취업할 수 없다.

지난해 법무부가 학계와 시민단체에 의뢰해 난민 신청자와 인정자 등 3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생계비 지원(43.1%)이 필요하다고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56.9%가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른 적이 있었고, 45.3%가 한 달 평균 50만~100만원을 번다고 대답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팀은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응답자 80% 이상이 취업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취업 제한 정책은 실효가 없을뿐더러 생존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난민 신청자의 어려움만을 가중시켰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ㆍ전문가 "난민법 통과" 한목소리 = 현재 국회에는 현행 출입국관리법의 난민 관련 조항을 별도 법률로 분리하는 '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난민 지원 단체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조만간 국회 법안심사소위 심사를 앞둔 이 법률안이 통과되면 난민들의 생계 불안이 대폭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률안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정부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의무화한 조항이다.

또 취업 허가 시점을 신청 후 1년 이상에서 6개월 이상으로 줄이고, `난민 신청자' 개념에 행정소송 중인 사람까지 포함해 혜택을 확대하도록 했다.

최원근 난민인권센터 사업팀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그간 소외됐던 소송 중인 난민도 제도권 내에 들어오는 등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난민 신청자 범위 확대 등에 대해 '법무부가 난민 판단을 하는 기관이라는 법 체계가 흔들린다'며 반대하고 있어 원안대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이에 대해 "난민 신청자가 합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보장한다는 최소한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사 단축ㆍ대안 주거시설 마련도 과제 = 근본적으로는 1차 난민 심사를 전담하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인력을 늘려 대기 장기화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간 400명 이상이 난민 지위를 신청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할 인력은 3명뿐이어서 해마다 심사 대기 인원이 적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난민 지원 단체인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난민 문제가 인력 배당에서 밀리는 것"이라며 "외국에서는 난민 심사 절차나 기한 등을 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도 많다"고 지적했다.

본국에서의 박해 및 한국에서의 소외 등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난민들을 위해 대안적인 주거 시설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난민인권센터는 순수 민간 후원으로 난민들을 위한 주거 시설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최근 모금에 들어갔다.

최원근 팀장은 "난민들은 개인적 '트라우마'로 인해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며 "이들의 개인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