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개념이다. 선대의 문화를 후대가 이어감으로 인해 문화적 연속성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문화적 연속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지금의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밈(meme · 문화유전자)'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밈은 한 사회에서 문화적 요소로서 전승되는 유전자 같은 기초 요소를 지칭한다. 지성과 지성 사이에서 전달되는 문화적 정보의 복제자를 칭하며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다.

필자는 우리 술에서 밈을 찾고자 한다. 우리 조상들은 술을 음식으로 생각했다. 음식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 집안 대소사에 술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술 빚는 방법이 다 달라 집에서 술을 담가 마시는 가양주(家釀酒)가 조선 말기까지 600가지가 넘게 제조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술과 더불어 술에 집안마다 고을마다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그 궁합을 음미하는 주안상 문화도 발달하게 됐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술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에 국가가 개입하면서 이런 우리의 술문화는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가 1909년 2월13일 한반도에 주세법을 시행하면서 그 많던 가양주의 명맥과 우리의 술 문화가 끊겨 버린 것이다. 술 빚는 방법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풍류를 즐길 줄 알던 우리 조상들의 즐겨 왔던 술 문화까지도 단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가히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의 와인,독일의 맥주,영국의 위스키처럼 각 나라를 연상했을 때 떠오르는 술이 있다. 술이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나라의 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상품이며 와인을 마시는 것은 세련된 서양문화와 풍요로운 웰빙 문화를 마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조상들의 찬란한 술 문화가 있었음에도 현재 우리는 희석식 소주와 수입산 주류의 범람 속에서 살고 있고,우리 술뿐 아니라 술에 어울리는 안주로 주안상을 차렸던 전통 음식문화는 물론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술을 즐기던 우리의 주도는 기억 속에서 나날이 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 늦기 전에 사라진 우리 술을 복원하고 현대화하는 작업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뇌리 속에서는 잊혀졌지만 우리 민족의 유전자(DNA) 속에는 기억돼 있는 우리 술의 맛과 멋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술을 살리고,좋은 술과 좋은 음식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조상들의 술 문화에 담긴 풍류와 전통의 가치,즉 우리 술에 담긴 문화유전자를 후대에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중호 < 국순당 사장 jungho@ksd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