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변호사가 일본에서 사무실을 열고 외국법 자문업무를 시작한 때는 1987년이다. 한국 · 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타결에 따라 오는 7월1일 법률시장 빗장을 처음 여는 한국보다 24년 앞선 셈이다. 이후 1994년에 일본 · 외국 로펌 간 제한적 동업을 허용했고 2005년 4월에는 문호를 100% 열었다. 총 19년이 걸렸다. 그동안 일본 로펌은 대형화됐고,영미계 로펌과의 합작 · 합병 등으로 선진기법도 많이 전수받았다. 한마디로 연착륙했다는 평가다.

◆일본 법률시장 2005년 완전 개방

일본 변호사 수 기준으로 상위 20대 로펌 가운데 7개가 외국 로펌과 제휴하고 있다. 그만큼 외국 로펌은 일본 변호사 업계에 깊이 파고들었지만 제휴하고 있는 로펌 간 끈끈한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이는 로펌 명칭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쿄 아오야마 아오키 코마 베이커&맥킨지'는 일본 '도쿄 아오야마 아오키 코마'와 미국계 '베이커&맥킨지'가 합쳐진 로펌이다. 두 로펌 변호사들은 한 사무실을 쓰고,일도 같이 하고,주머니(재정)도 하나다. 100% 합병한 형태다. 일본 내 서열 6위(총 변호사 수 134명)로 합병 로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클리퍼드찬스,존스데이 법률사무소처럼 외국 로펌 명칭만 쓰는 경우는 합병 로펌이라기보다 사실상 외국 로펌이다. 일본 변호사가 42~49명 있긴 하지만 파트너를 제외하면 대부분 피고용인이다. 외국계 로펌의 일본 지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각각 7명의 외국 변호사가 로펌을 실질적으로 운영한다. 로펌 명칭에 병기된 '외국법 공동사업'이라는 문구는 조합 계약 등으로 외국 변호사와 일본 변호사가 하나의 사업체를 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 변호사와 외국 변호사가 사무실을 따로 쓰는 경우도 있다. 화이트 앤 케이스,이토 미토미 법률사무소 같은 곳이다. 이들은 일본 변호사(42~44명)와 미국 변호사(25~33명)가 비슷하게 있다. 두 로펌 중 한 곳이 주도를 하지만 업무에선 독립성이 보장된다. 단 '외국법 공동사업'의 대상인 업무 영역에서는 하나의 사업체로서 상호 협조하는 관계다.

일본 서열 1위인 니시무라 아사히(일본 변호사 483명)부터 5위인 TMI 종합 법률사무소(일본 변호사 235명)까지는 외국 변호사 숫자가 1~6명에 불과한 등 시장 개방의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덩치 커졌고,선진기법 배웠다

몇년 전 일본에서는 73명의 변호사가 있던 한 일본 로펌이 링클레이터스라는 영국 로펌 산하에 들어갈지 여부를 놓고 논의하던 중 내부 분열이 일어나 둘로 갈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만 해도 언론에 대서특필했지만 극단적인 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시장 개방은 연착륙했다는 총평이다. 오히려 플러스 효과가 많았다는 것이 일선 변호사들의 평가다.

가장 큰 변화는 로펌의 대형화.2000년 이전까지 일본에는 큰 로펌이 없었다. 30명 안팎의 중소 로펌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변호사 수 100명이 넘는 로펌들이 생기더니 지금은 그런 로펌이 7개나 된다. 법률 시장이 개방되기 전에 덩치를 키워놓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두려움이 중소 로펌 간 합병을 재촉한 것이다.

재외동포 3세로 와세다대를 나와 2002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철민 변호사에 따르면 그가 속한 시티유와 법률사무소는 25명 정도의 부티크 로펌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2003년부터 합병을 거듭해 지금은 115명의 서열 7위 로펌으로 성장했다.

김 변호사는 "로펌이 대형화돼 종래 불가능했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업인수 · 합병(M&A)관련 서비스 증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도 영미계 로펌이 들어오기 전에는 M&A 대상 기업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는 법률실사(듀딜리전스)라는 개념을 몰랐다고 한다. 일본 로펌이 영미계 대형 로펌의 사업 방식을 수입한 것이다.

거래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 일본 고객들의 높은 로열티도 시장 개방 피해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김 변호사는 "일본은 능력 있는 변호사를 찾는 풍토여서 외국 로펌이 들어왔다고 해서 기존의 변호사를 등지는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영미계 기업이 일본에 진출했을 경우 종래 자국에서 이용해오던 영미계 로펌에 자문(섭외사건)을 구할 수 있게 돼 일본 대형 로펌의 일감을 빼앗아갔을 수는 있다고 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