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국내시장은 얼마만큼 잠식당할까. 로스쿨 졸업생들에게도 시장개방이 의미가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4일 서울 중림동 본사 빌딩 17층 영상회의실에서 김앤장 광장 등 7대 로펌 변호사들과 함께 시장개방의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짚어보았다.

▼사회자(김병일 기자)=법률시장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김기준 법무부 국제법무과장(검사)=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개방이기 때문에 개방 대상이 유럽 국가로 제한되고,1단계에서는 외국 변호사가 들어오더라도 외국법에 관한 자문으로 업무 역시 제한됩니다. 법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려면 5년 더 걸립니다.

▼송창현 변호사(세종)=우리나라 법률시장 규모가 연 2조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변호사 수가 300명 이상인 국내 로펌들이 앞으로도 속속 등장할 텐데 외국 로펌이 이 정도 사이즈를 가지고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전문성에서도 우리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준기 변호사(태평양)=1단계 개방에서는 동업과 고용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변화는 없을겁니다. 이미 외국 변호사들이 출장 형태로 한국에 들어와 호텔에 투숙하면서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달라질 게 별로 없습니다.

▼사회자=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국내 시장 잠식이 우려되나요.

▼임성우 변호사(광장)=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해외 사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아웃바운드 부분이 가장 타격받을 것 같습니다. 외국 로펌들이 고객들과 직접 접촉할 경우 국내 로펌이 개입할 기회가 줄게 되죠.

▼김재영 변호사(화우)=기업 인수 · 합병(M&A) 분야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토종 로펌이 강점을 가지는 규제나 송무분야는 공략이 어렵겠죠.하지만 글로벌 네트워크를 앞세울 경우 공정거래나 규제 분야도 더 이상 한국 로펌이 독식하지 못할 겁니다.



▼권오창 변호사(김앤장)=프랑스의 경우 영미로펌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법률소비자들의 수임료 부담이 커지는 결과가 됐습니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경쟁이 치열해져 수임료가 낮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데，만일 국내 로펌이 법률시장의 주도권을 잃게 되면 오히려 반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좋은 실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영일 변호사(율촌)=한국 로펌들이 한국의 기업들을 위하여 더 해야 하는데 현재는 못하는 업무，또 당연히 차지해야 하는데 그 몫을 충분히 차지하지 못하는 영역도 '잠식'의 개념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자=외국 로펌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도 있다고 봅니다만.

▼임성우 변호사=법률사대주의가 있습니다. 영어로 진행하니까 저쪽이 더 잘하겠거니 하고 외국 로펌이 100장 써내면 1000주고 우리가 100장 써내면 300,400주는 게 있습니다. 국제중재 쪽에서는 삼성 LG 현대자동차만 해도 갑의 위치에 있어요. 그런데 무슨 사건만 터지면 한국법이 아니라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준거법이 그쪽으로 지정되는 순간 모든 주권이 그쪽으로 넘어가버립니다.

▼이준기 변호사=고객의 판단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에너지 분야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자원 개발에 나선 지 몇 년이 안됐어요. 서구 선진국의 경우 1900년대부터 나섰기 때문에 다양한 딜과 리스크헤지 경험이 있고,노하우가 아무래도 우리보다 앞선 건 사실이죠.우리 로펌들이 빨리 따라잡아야겠지요.

▼유영일 변호사(율촌)=영어 때문에 기가 죽을 때가 있지만 포장을 한꺼풀만 벗겨내면 누구한테도 안 집니다. 다만 수요자 관점에서 봤을 때 내가 진정한 서비스맨인가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제기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사회자=외국 로펌에서 배울 점도 많겠지요.

▼유영일 변호사=함께 일해본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기업친화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소비자들도 이제 우리가 인위적으로 분류하는 법률과 경영 이런 것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권오창 변호사=지식서비스 산업시대는 세무,회계,법률 등 영역 구분이 없이 싸우는 이종격투기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역파괴 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미계 대형 로펌의 경우 이런 종합적인 서비스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러한 상태에서 국내로 진출하는 겁니다.

▼사회자=수요자 입장에서 볼 때 법률시장 개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송창현 변호사=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법률전문가로부터 질 높은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므로 법률소비자의 선택권이 커지는 거죠.다만 법률비용이 30% 이상 비싸질 수 있습니다. 외국 로펌의 프리미엄 청구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경우도 있어요. 로펌 정보가 적정히 공개돼야 가격 대비 효율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기준 국제법무과장=바람직한 경쟁상태가 형성되면 수임료 경쟁도 있겠지요. 만에 하나 외국 로펌에 중요한 M&A자문시장이 지배당했을 때 가격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할 겁니다.

▼사회자=내년부터 배출될 로스쿨 졸업생에게 법률시장 개방은 득이 될까요.

▼박기태 변호사=최근 바른에서 로스쿨 졸업 예정자들을 많이 선발했습니다. 외국어에 능통하거나 외국생활 경험이 있어서 국제화에 용이한 자원들도 다수 있고，또 공학이나 회계학 등 학문분야도 다양한 인재들이 많은데 탄탄한 법률 실력을 갖춘 사법연수원 출신에 더하여 다양한 배경을 가진 로스쿨 졸업생들을 잘 훈련시켜 배출하는 경우 국내 법률시장의 개방이 해외 법률시장으로의 진출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자=먼저 개방한 일본과 독일에서 배울 점이 있겠지요.

▼송창현 변호사=일본 로펌의 5위까지가 토종 로펌인데 고객들의 로열티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장개방시 한국 로펌만을 이용하겠다는 한국 고객은 2%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한국 로펌은 지속적인 경쟁 압력을 받게 될 것이므로 아시아 시장 진출，전문화，대형화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임성우 변호사=한국 로펌들을 잘 키워 자문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만 해도 변호사 비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외국 로펌이 들어오면서 엄청 비용이 뛰어올랐죠.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 같지만 잘하고 있는 로펌을 업그레이드해서 해외보다 싼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줘야 합니다.

▼권오창 변호사=법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제도와 관련있기 때문에 주도권이 외국계로 넘어가는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로펌의 경우 상당수가 영미계로 넘어가면서 사법 절차 자체가 영미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집단소송 같은 제도를 바꾸려는 압력에 직면하는 것이 그런 사례죠.

▼사회자=법률시장 개방이 현실화된 만큼 마음가짐도 달라져야겠죠.

▼김기준 국제법무과장=법률서비스도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또 해외 쪽으로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요. 로펌들이 연합을 하거나 해서 좀 더 과감하게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중소 로펌들도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등 시장 동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영일 변호사=해외 진출과 관련해선 러시아를 특히 유망한 시장으로 꼽고 싶습니다. 우리 로펌들이 잘 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도와주고 정부에서도 권장해주면 좋겠습니다.

▼송창현 변호사=전략적 산업측면에서 법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법은 사회적 자본이기도 합니다. 법률시장이 커지고 선진화된다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자본이 커지는 걸 의미합니다. 단순히 밥그릇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법제도를 해외에 수출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김기준 국제법무과장=법정비 지원사업은 법무부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민간에서 추진하다가 필요할 경우 요청하면 정부는 언제든 지원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김재영 변호사=한국 로펌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분야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성장하면서 국제 수준에 필적한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국내 로펌을 계속 활용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