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이명박 정부, 환골탈태 보여줄 길
분위기란 무서운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고향과 출신학교까지 죄다 바뀐다. 중간간부 또한 줄줄이 사탕이다. 변죽만 울려도 알아서 움직이고,대세다 싶은 쪽으로 우르르 쏠리고,행여 생각이 달라도 찍힐까 입을 닫는다. 방송에서 자주 쓰이는 사투리마저 변한다.

누가 시킬 리 없다. 그저 달라진 주도세력의 비위를 맞추는 결과다. 흐름에서 밀린 듯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여성 정책만 해도 그렇다. '선진국 수준의 양성평등을 이루겠다'던 대선 공약은 집권 후 물거품이 됐다. 장 · 차관 수는 줄고 정부 위원회의 여성 비율은 행정기관 평가지표에서 빠졌다.

게다가 권력 실세들은 곳곳에서 '여자가 뭘'이란 식의 인식을 드러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여기자들에게 "직업을 갖기보다 현모양처가 되는 게 낫다'고 말했을 정도다. 결국 2006년 6.23%였던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2009년 3.68%로 하락하고,2006년 33.7%였던 정부위원회 여성 비율 역시 2010년 22.3%로 떨어졌다.

정부가 이런데 기업이라고 여성을 챙길 리 만무하다. 종업원 1000명 이상 기업의 여성임원은 겨우 3.0%(대기업 1.3%)다. 15세 이상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4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1.3%)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서비스 · 판매업 등 단순 저임금 직종인데다 비정규직 투성이로 정규직은 47%에 불과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2월 30대 여성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80%가 "한나라당이 싫다"고 답했다는 건 'MB정부에 여성은 없다' 내지 '여성정책은 실종됐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려주고도 남는다.

어떤 조직이든 여성이 늘어나면 의사 결정 과정은 달라진다. 여성과 소수 · 약자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정치 · 경제 활동 참여 증가가 형평성 제고와 빈곤 퇴치에 기여하고 부패를 감소시켜 경제효율성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근거다. 국회와 정부의 여성 비율이 10% 증가하면 청렴지수는 0.25,부패인지지수는 1.2포인트 개선되고,여성임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수익과 주가가 높아진다는 발표도 있다.

정부가 '업무 특정 평가지표'에서 제외시켰던 중앙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여성 비율을 평가항목으로 되살리는 한편 국무총리실 · 행정안전부 · 기획재정부 및 관계기관이 함께하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고위직 여성공무원 및 공공기관 여성임원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여성 비율이 40% 이상 되면 최고 2점의 가산점을 주고,'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비상임이사 여성비율 30% 이상'을 권고조항에서 의무조항으로 바꾸는 동시에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 여성 비율을 명시하는 방안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벼랑 끝으로 몰린 형국이다. 대통령의 말은 장관에게조차 먹히지 않고 한나라당이 내놓은 정책은 정권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성장하긴커녕 퇴보한 정권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선진일류국가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며 공정사회 실천을 내걸었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배려 없이 공정사회도 선진 일류국가도 없다.

기득권에서 먼 이들일수록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다. 양성평등을 체감할 획기적이고 상징적인 조치가 아쉬운 이유다. 기득권 세력의 조언에 기대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뭔가 보여주자면 여성부와 보건복지부 외에 나라 살림을 도맡는 행안부나 부패덩어리라는 건설교통부에 여성장관을 기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여성관리자가 늘면 '룸살롱 외상값을 갚아달라'는 식의 비리는 사라질 테고,인간관계란 사슬에 얽혀 저지르는 부정도 줄어들 것이다. 대통령이 지침을 확실히 하면 장관과 공기업 수장도 따라간다. 여성정책 통합 · 조정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