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맥주 300㏄ 한 잔 더 추가했더니…"처음부터 500㏄ 먹지, 그렇게 원가개념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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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절감 스트레스
쓰지도 못하는 법인카드
거래처 잘 대접하라며 줘 놓고는…팀장 같이 안가면 "비용처리 불가"
남녀차별 싫어요
女 "남자들만 2·3차…비용은 누가"…男 "택시비는 왜 여직원들한테만…"
쓰지도 못하는 법인카드
거래처 잘 대접하라며 줘 놓고는…팀장 같이 안가면 "비용처리 불가"
남녀차별 싫어요
女 "남자들만 2·3차…비용은 누가"…男 "택시비는 왜 여직원들한테만…"
"삼성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언 이후 삼성그룹 주변에는 냉기류가 여전하다. "회장님이 화나셨다"며 거래처와의 동행 해외 출장이나 골프 약속을 취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주변의 음식점들도 손님이 줄어 울상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김과장,이대리들에게도 결코 반갑지 않다. 평소에도 "회삿돈이 줄줄 샌다"며 경비 지출을 옥죄는 경영진이 삼성 사례를 핑계 삼아 더 빡빡하게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과장,이대리들은 '직원 등골 빼먹겠다'는 식으로 자린고비 정신만 강조하는 회사의 인색함이 얄미울 때가 많다.
◆출장이 짜증나
과거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 김과장,이대리들에게 해외 출장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제한된 예산에 맞추기 위해 휴식 없이 돌아다니고,샌드위치로 하루 세 끼를 때우느라 오히려 몸만 축난다.
금융권 공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는 출장 일정이 정해지면 우선 프라이스라인닷컴(www.priceline.com)과 같은 해외의 호텔 예약 경매 사이트부터 들어간다. 빠듯한 비용으로는 '제대로 된' 호텔을 잡기 힘들어서다. 김 대리는 "하루에 한 번씩 사이트에 들어가서 경매를 붙이는 것도 무척 번거로운 일"이라며 "출장 직전까지 한 곳도 걸리지 않으면 결국 내 돈을 보태서 숙소를 잡는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홍콩,싱가포르 등지로 출장이 잦은 최 과장은 출장만 갔다 오면 온몸이 쑤신다. 숙박비를 맞추려다보니 고시원 크기의 좁은 방에 묵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는 "방도 좁은 데다 그나마 더 싼곳을 찾느라 우리로 치면 서울 시내에서 분당 정도 거리의 숙소를 오가다 보니 몸살이 날 정도"라며 "거래처에서 호텔로 차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얕보일까 봐 거절한 적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석유화학기업 홍보팀의 장 과장은 해외 출장이라면 손사래부터 친다. 출장 때 통역을 썼다가 담당 임원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주제에 무슨 출장이냐"는 핀잔을 받은 뒤부터다. 장 과장은 "내 딴엔 철저히 한다고 한 게 망신만 당했다"며 "몇 십만원 가지고 그러는 걸 겪고 나니 출장 갈 생각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법인카드는 팀장 있을 때만 써라(?)
거래처 접대 및 회식 비용과 관련한 갈등도 많다. 전자부품 업체에 다니는 정 대리는 법인카드를 쓸 때면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용과 인원,목적을 보고한다. 정 대리는 "본인이 썼을 땐 관대한 팀장이 직원들에겐 엄격하다"며 "거래처를 잘 대접하라고 하고선 돈 많이 썼다고 깨기에 그 뒤론 무조건 '선 보고 후 조치'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체 윤 과장은 '악덕' 팀장 탓에 한동안 보릿고개를 보냈다. 그는 "거래처와 약속을 잡았는데 팀장이 갑자기 일이 생겨 혼자 만난 적이 있다"며 "그래 놓고선 '자기 없이 약속에 갔으니 비용 처리를 못 해준다'고 해 결국 내 지갑에서 수십만원이 나갔다"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 과장은 얼마 전 회식 때 수산시장에 가서 회를 떴다. 법인카드 한도를 생각해 회사 인근 찌개집을 회식 장소로 잡았지만,'회 킬러'인 담당 임원의 취향을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식당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직접 회를 공수해 왔다. 이 임원 밑의 김 팀장."7시까지만 일하고 더 처리할 게 있으면 집에 가서 해라." 그가 1인당 6000원인 야근 식대를 아낀다고 늘 하는 말이다. 팀장이 이러다 보니 직원들은 자기 돈을 써가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야근을 한다.
부서 총무의 소소한 기쁨 가운데 하나인 포인트 쌓기를 뺏어가는 일도 있다. 대기업 L사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유 대리는 임원들의 회식비를 가끔 개인 카드로 결제하곤 했다. 100만원이 넘어가는 회식비에 포인트가 3%나 쌓이니 꽤 쏠쏠했다. 그러던 어느날 팀장의 한마디."회삿돈으로 개인 포인트 쌓아서 부자 되면 좋겠냐." 물론 유 대리의 가슴에는 비수처럼 꽂혔다.
◆비용 쓰는 데도 차별의 설움이
비용 정산에도 남녀 차별이 있다. 정유회사 기획팀의 홍일점인 민 과장의 하소연."팀비 아낀다고 1차를 삼겹살로 하고선 저만 쏙 빼놓고 남자들끼리 2차 노래방에 3차 호프집까지 갈 때는 야속해요. 이럴 땐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우아하게 먹고 1차로 끝나는 회식이 부러울 뿐이에요. " 반면 야근 뒤 9시가 넘으면 여자 직원에겐 택시비를 지원하지만,남자 직원들에겐 버스카드 한 장 없는 역차별 사례도 있다.
팀 간에도 차별의 설움은 존재한다. 와인과 한우로 배를 두드리는 '부자팀'이 있는가 하면,늘 치킨과 맥주,사정이 좀 좋을 때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서민팀'도 있다. 1주일 내내 구내식당에서 짬밥을 먹은 뒤 회식비는 'n분의 1'로 나눠내는 '빈민팀'도 있다.
서민팀,빈민팀의 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모처럼 마음 먹고 탕비실에 유자차,미숫가루,아이스티 등을 두루 갖춰 놨다가 팀장으로부터 곧바로 한소리 들었다. "돈이 남아도냐.앞으로 봉지 커피,녹차,둥글레차 이상은 살 생각 하지마." 사무용품을 놓고는 '보급 투쟁'이 일상화 돼 있다. 포스트잇,스테이플러는 물론 부서별로 할당돼 있는 주차권까지 웬만하면 옆팀에서 빌려쓴다.
◆"너희만 스트레스 받냐"
이렇게 김과장,이대리들을 구박하는 박부장,최이사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섬유업체 임원인 고 이사는 팀장 시절 본부장과의 골프모임 생각을 하면 지금도 정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운동 후 클럽하우스에서 식사할 때 고 이사가 맥주 300㏄를 추가 주문하는 순간 본부장이 정색을 하고 면박을 줬다. "팀장까지 된 사람이 이렇게 원가 개념이 없어서 되겠어? 이 골프장 클럽하우스의 맥주 가격은 300㏄는 6000원,500㏄는 7000원으로,처음부터 500cc를 바로 시켰으면 5000원을 아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골프 후 기분 좋게 맥주 한잔할 때 한두 잔 가격 차이를 따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지만.고 이사는 "가끔 맥주 마실 때 그때 생각이 나는데 솔직히 맛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대형 금융기업 S사의 손 부장은 나름대로 회사에 대한 충정으로 골프장 접대비를 아끼려다 감사팀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골프장에서 선물용으로 많이 쓰는 과일 바구니 값을 아끼려고 집 근처 마트에서 싼 값에 몇 번 샀다가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쓴 것 아니냐는 의심만 받은 것이다. 손 부장은 회사 공금 아끼려고 번거로움까지 무릅썼건만,그에게 돌아온 것은 의심의 눈초리뿐이었다. 그는 그 이후 값이 얼마가 됐든 과일 바구니는 무조건 '안전하고 편리하게' 골프장에서만 산다.
조재희/고경봉/강유현/강경민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