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당위업(建黨偉業)'이란 영화가 지난 15일부터 중국 전역에서 일제히 상영되기 시작했다. 오는 7월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에 맞춰 만든 대작 블록버스터다. TV에선 공산혁명을 다룬 홍색(紅色)드라마 60여편이 수십개의 채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혁명가요인 홍가(紅歌) 경연대회도 여러 도시에서 열리고,심지어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라디오에서도 '나의 조국','오성홍기','황허를 지켜라' 같은 혁명가요가 계속 흘러나온다. 대형 포털사이트엔 공산당 창당 90주년 특별코너가 마련됐고,인민은행은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 주화를 만들어 배포했다.

중국 정부의 이런 홍색 캠페인 덕인지 공산혁명의 성지엔 요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소식이다. 마오쩌둥이 장제스의 군대와 대치 중 숨어들었던 장쑤성 진강산(井岡山)이나 대장정이 시작된 장쑤성 루이진(瑞金),중공의 수도가 된 옌안(延安) 등 혁명성지는 역사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외신과 입소문을 통해 들은 중국 소식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중국 남부 광저우 쩡청시에선 무장경찰과 농민공들이 충돌하는 준 계엄상황이 펼쳐졌다. 농민공 임산부가 단속반에 폭행당하자 이에 격분한 농민공들이 집단 항의하면서 촉발된 이번 사태는 나흘 연속 지속됐다. 경찰서와 순찰차를 1000여명의 농민공이 공격하고,2700여명의 무장경찰이 장갑차를 타고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는 살벌한 광경이 목격됐다. 이에 앞서 네이멍구에선 몽골족들이 차별에 항의하는 집단시위를 벌였다. 톈진과 푸저우에서는 사제폭탄 테러가 있었고,지난달 네이멍구와 후베이성에서도 농민공들이 들썩였다.

중국 대륙에서 동시간대에 벌어진 이 두 가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고민스럽다. 한쪽에선 당의 창건을 찬양하는 깃발을 흔들어 대고,다른 한편에선 못 살겠다고 울부짖으며 각목을 휘두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부(富)와 권력이 세습되며 신 귀족층이 탄생하고 있는 반면,또 한쪽에선 가난을 대물림하는 2억3000만여명의 농민공이 차별대우의 상징적 존재가 돼 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어색함과 일치한다.

지금 중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홍색켐페인은 단순히 역사를 되짚어보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열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해보려는 안간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상하위 10%의 소득격차가 1985년 2.9배에서 작년 55배로 벌어졌고,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는 기준인 0.4를 넘어 지난해 0.5에 이른 상황에서 홍색캠페인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홍가와 외신 속에서 들려오는 농민공들의 외침은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느껴진다.

중국공산당은 앞으로 10년 후 창당 100주년 때도 공산혁명을 찬양하는 '흘러간 레코드'를 틀어서는 곤란하다. 누가 먼저 부자가 되든 상관없다던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은 중국을 주요 2개국(G2)의 위치에 올려놓으며 그 사명을 다했고,이를 대체할 새로운 방향이 제시돼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중국 내부의 아픈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못하다면 고향을 떠나 대도시 공장에서 월 1000위안 안팎의 돈을 벌며 생고생을 하고 있는 농민공들에게 공산당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기 곤란하지 않겠는가.

베이징 = 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