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아젠다와 시급한 현안들을 토론하는 데는 사실 인식에서 합의된 잣대가 있어야 한다. 주장과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사실에서 만큼은 공통의 기초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들만 하더라도 그렇다. 해법과 대안을 찾는 토론을 진행할 만한 의미있는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거벗은 주장들만 격돌하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위 반값 등록금을 토론하기 위한 기초 통계가 저마다 다르고,가계부채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부채내역은 아예 공개조차 안 되고 있다.

복지예산은 정부 부처마다 제각각이어서 전체적인 그림을 추정하기 어렵다. 감사원이 서울시의 아라뱃길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여기에 사용된 기초자료들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측이 서로 다른 수치들을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 처우 문제는 비정규직을 정의하는 문제에서부터 견해가 엇갈린다. 4대강 예산 논쟁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 중에는 고의적으로 통계를 왜곡하는 사례들도 많다. 부풀리기나 축소하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정부가 통계를 은폐하는 것은 이 정부 들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각 부처는 예산투쟁에 유리한 자료만 발표할 뿐 정부 부처 간에 공유하는 절차가 없다. 통계가 권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잘 아는 공무원들은 자기 부처가 생산하는 자료를 결코 다른 부처와 공유하지 않는다. 갈등하고 내연하는 정부 부처는 물론 주요 정당들,시민사회단체들은 대부분 군맹무상(群盲撫象)식의 주장만 거듭할 뿐 객관적 수치와 이에 기반한 합리적 토론을 진행하는 데는 미숙하다. 이런 점이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 다급한 현안인 두 가지 사례를 들여다 보자.